차기 미국 대통령은 누가 될까. 현지 언론의 여론조사를 얼핏 보면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전국 단위 지지율에서 해리스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3%포인트 안팎 앞선다고 나온다. 무역, 방위비, 북핵 대응 등 불확실성이 컸던 트럼프 1기 당시의 공포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내심 해리스의 당선을 바라는 분위기다. 유럽 등 다른 국가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분위기는 다르다. 전국에선 해리스가 지지율에서 우위지만 미 선거 결과를 좌우할 7대 경합주 분위기는 두 후보가 초박빙이다. 1~2%포인트 차이로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이를 놓고 트럼프의 승리를 점치는 이가 적지 않다. 우선 숨은 트럼프 지지자인 '샤이(shy) 트럼프'가 여전히 많다. 최근 대선 최대 승부처인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60대 백인 여성은 기자에게 "트럼프는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겪었던 미 경제를 호황으로 돌려놓을 것"이라며 "나와 내 친구들 모두 겉으로는 크게 드러내지 않지만 침묵하는 트럼프 지지자"라고 밝혔다. 트럼프 특유의 막말 논란과 각종 사법 리스크로 본심을 숨기지만 투표장에선 그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여론조사보다 실제 선거에서 트럼프가 2~3%포인트 더 득표하는 샤이 트럼프 결집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해리스가 흑인 여성이란 점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합주 승리에 절대적인 백인 남성 유권자들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조차도 해리스의 성별과 인종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백인과 남성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면서 여성인 해리스에 대한 불편함이 선거 당일 투표장에서 어떻게 발현될지가 관건이다. 여전히 미국 인구의 57%는 백인이고,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는 80%가 백인이다. 백인 남성으로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인데다 스킨십 정치로 유명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비교하면, 백인 남성 유권자를 상대로 한 해리스의 소구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지지층을 투표장에 얼마나 나오게 하는지가 선거의 핵심이란 점에서,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트럼프와 비교해 소수 인종 여성인 해리스 지지층의 결집도가 느슨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특유의 선거인단 제도로 앨 고어와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처럼 전국 득표수에서는 이기고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 패배하는 상황이 해리스에게 연출될 수 있다. 선거 결과를 좌우할 7대 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을 보유한 펜실베이니아에서는 백인 유권자를 중심으로 트럼프 지지세가 점차 강해지는 모습이다. 최근 미 정치 전문 매체 더힐과 에머슨대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에서 49%의 지지율로 해리스(48%)에게 1%포인트 우위를 나타냈다. 펜실베이니아는 프래킹, US스틸 매각 논란 등 경제 이슈가 특히 중요한 지역인데, 이는 경제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호평받는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초강력 허리케인 밀턴의 미 남부 지역 강타, 이스라엘과 이란의 긴장 고조에 따른 석유 가격 상승 등도 해리스에겐 악재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현실화하면 대외 정책에서 보다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2기 때는 트럼프의 이른바 '브레인'들이 늘어난 데다, 정치적 입지도 8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해졌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정치권은 연일 김건희 여사 논란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소모적인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이전 정부의 '적폐몰이'에 당했던 관료들은 최대한 윗선의 눈에 띄지 않은 채 복지부동하려 한다. 우리는 트럼프 2기 집권 가능성에 얼마나 대비돼 있나. 미 대선이 불과 24일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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