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상대방보다 한 주라도 더 갖기 위한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가운데 국민연금과 외국인 투자자의 대응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쪽으로 무게추가 기울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7.57%, 외국인 보유율은 17.85%다. 공개매수 과정과 향후 주주총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물량이다. '중립' 가능성이 높은 국민연금은 논외로 치더라도 외국인 투자자를 공개매수로 끌어와야 이번 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양측의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과거에도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공개매수에는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주가가 단기적으로 치솟았기 때문에 일부 물량을 기계적으로 차익 실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3년 벌어진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 당시 국민연금은 에스엠 보유 물량을 거의 절반 가까이 덜어냈다. 경영권 분쟁 이전 8.96%에서 4.32%로 줄었다. 이 기간 공개매수에는 전혀 응하지 않았다. 장내 매도를 하게 되면 유통물량이 증가하면서 주가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은 대량보유 종목(지분율 5% 이상)의 경우 시차를 두고 지분율 변동을 공시한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을 마지막으로 이달 7일 현재까지 고려아연의 지분율 변동을 공시한 것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국민연금 출신의 한 관계자는 "공개매수 과정이 끝난 후 향후 주주총회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캐스팅 보트가 될 가능성은 아직 존재한다"며 "고려아연의 장기적 가치를 위한 방향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결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될 경우 한쪽이 공개매수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더라도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안건이 부결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만 고려아연의 경우 국민연금의 지분 보유 목적이 '단순 투자'이기 때문에 기권으로 '중립'을 지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단순투자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소극적인 투자 형태다.
공개매수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결국 합계 17%대의 지분을 보유 중인 외국인 투자자다. 이들의 공개매수 참여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 당시 의결권 행사로 현 경영진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한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당시 경영진은 신주발행을 용이하게 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추진했지만 53%의 찬성으로 부결됐다. 특별 결의인 정관변경은 주주총회 참석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이 안건은 현 경영진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추진한다며 영풍 측이 반대한 안건이다. 이 과정에서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과 네덜란드 연기금(APG)은 반대,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캘스터스)은 찬성으로 엇갈린 표심을 보였다. 이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양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반대, 글래스루이스는 찬성으로 역시 엇갈렸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표심이 엇갈렸던 정관변경 때보다 더 예상하기 힘든 것이 현재 상황"이라며 "세금과 위법성 등을 고려해 어떤 쪽이 이득일지 마지막까지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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