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공원 잔디에 절대 못 들어가게 해요.”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이모씨의 철칙이다. 집 근처 공원의 잔디밭이나 풀숲에 개들이 오줌을 싸도 뒤처리하지 않는 반려견주들을 본 뒤로 이런 원칙을 세웠다. 이씨는 공원 잔디밭에서 자녀들과 공놀이하는 가족들을 봐도 위생 생각뿐이다. 그는 “개가 영역을 표시한다고 해도, (견주가 대신) 뭐라도 좀 뿌려야 하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서울 망원한강공원에서 만난 김모씨(65)도 비슷한 입장이다. 그는 “사람 앉는 벤치 위에 왜 개를 올려두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원 벤치 다리 가까운 쪽에 마킹을 하거나, 배변투성이일지 모를 흙바닥을 밟고 다닌 개들이 찝찝하다는 취지다. 이어 “자기 개니까 예쁜 거지, 개를 키우지 않는 나는 도통 이해 못 한다”고 했다.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 중에는 개를 기르는 ‘반려견 가구’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312만 9000가구다. 전체 가구 수(2092만7000가구)의 약 15%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개를 기르는 가구는 242만3000가구(11.6%)로 가장 많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 4곳 중 3곳은 개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최근 반려견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반려견용 배변 봉투는 반려견 산책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개의 소변이나 ‘마킹’ 행위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마킹은 개가 소변을 뿌려 흔적을 남기거나 자신의 세력 범위를 과시하는 행위다. 장소와 대상을 막론하고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몰티즈를 기르는 직장인 여성 이모씨(33)는 “대변만 봉투에 담고, 소변이나 마킹 흔적은 따로 치워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공원에 산책하면서) 그것까지 일일이 치우라는 건 무리인 것 같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마킹 또한 개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란 입장이다.
공공장소에서 반려동물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을 경우, 동물보호법 제16조에 따라 최대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소변에 대해선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공동주택의 엘리베이터와 계단 등 건물 내부 공용 공간, 평상과 의자 등 사람이 눕거나 앉을 수 있는 기구 위에 소변이 있는 경우에만 치우면 된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어 종종 이웃 간 마찰이 발생한다. 지난 3월에는 이웃 주민의 반려견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오줌을 싸놓지만, 이웃 주민이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는다는 사연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또 주차한 차량의 바퀴나 집 벽에 마킹된 자국을 냄새를 견디며 지우느라 애를 먹은 적 있다는 등의 사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작 현장 적발이나 미수거자 추적은 쉽지 않다. 실제로 2019~2022년까지 4년간 서울에서 적발된 배설물 미수거 사례는 불과 45건이다. 단속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어 반려견 보호자 개인의 페티켓(펫+에티켓)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의 경우, 수년 전부터 ‘매너 워터’ 캠페인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하나의 문화로 정착됐다. 매너 워터는 반려견이 산책 중 배변이나 마킹을 하면 흔적을 없애기 위해 뿌리는 물을 말한다.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는 반려견이 배변을 마치면, 반려견 보호자들이 물병에 담은 물을 뿌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최근 국내에서도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매너 워터 사용을 권장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태형 한국동물복지표준협회 대표는 "반려인들의 페티켓은 아직은 부족하지만 성숙해가고 있다.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은 점점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반려인들에게만 페티켓을 요구하기에는 사회 전반적인 시설이나 지원이 아주 부족하다"며 "비반려인들이 역차별을 느끼지 않게 사회적 약자라는 개념으로 반려동물을 대하는 문화와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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