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IT기업 네이버를 이끄는 최수연 대표는 ‘40대 워킹맘’이다. 2022년 119명의 네이버 리더 중 최연소 여성으로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며 외부에서는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정작 내부에선 크게 놀라지 않았다. 최 대표 이전에 이미 유리천장을 깬 한성숙 전 대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국내 대형 IT 업계 최초의 여성 CEO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연이어 여성 CEO를 배출할 수 있었던 건 네이버가 성별이나 나이와 관계없이 능력만 있으면 기회를 주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또 임신과 출산이 커리어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지원하는 것이 네이버 가족 친화 제도의 핵심이다.
이런 영향은 양성평등부문에서 네이버가 상당히 앞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네이버는 ‘2024 아시아경제 100대 기업 양성평등 종합점수’에서 2위를 차지했다. 직전 조사 대비 순위가 한 단계 하락했지만 종합점수는 35.50점으로 동일했다. 정규직 수(4.75점), 근속연수(8.00점), 연봉(7.75점) 부문에서 평균치를 웃도는 점수를 받았고 사내이사 부문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15.00점을 획득했다. 여성 사내이사가 드문 상황에서 사내이사 2명이 모두 여성인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양성평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핵심 제도는 유연근무제가 꼽힌다. 네이버는 2022년부터 근무 시간뿐 아니라 근무 공간도 선택할 수 있는 ‘커넥티드 워크’를 도입했다. 직원들은 주 3일 출근하는 ‘타입 O’와 완전 원격 근무를 하는 ‘타입 R’ 중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또 정해진 집중 근무 시간이나 하루 최소 근무 시간 없이 평일 오전 6시부터 밤 10시 사이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유연한 근무 형태는 워킹맘과 워킹대디들에게 특히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네이버 직원은 "아이가 아프면 갑작스럽게 연차를 쓸 필요 없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병원에 데려갈 수 있다"며 "이미 모두가 익숙해져 특별한 제도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임신과 관련한 생애 주기별로도 세심한 지원이 제공된다. ▲임신 전 ▲임신 후부터 출산 전 ▲출산 후부터 육아휴직 기간 ▲복직 후까지 단계별로 필요한 지원이 이뤄진다. 특히 임신 전부터 복직 후까지 세분화한 지원이 돋보인다.
임신 전에는 난임 지원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올해 8월에 신설된 제도다. 난임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대 6개월의 난임 휴직을 제공하며 200만원 한도 내에서 난임 시술비를 지원한다. 육아휴직을 마친 후에는 원활한 복귀를 돕는 프로그램도 있다. 휴직 기간 동료들과의 네트워킹을 지속할 수 있도록 사내 동호회 활동비를 지원하고, 복직 시 비슷한 시기에 복직한 동료들과의 네트워킹 모임을 주선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휴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 만큼 이 기간에도 유대감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반영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임신 중인 직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우선 임신을 등록하면 50만원의 장려금이 제공된다. 이는 임신 사실을 초기에 알림으로써 연장·야간·휴일 근무를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임신 기간은 주 수에 상관없이 하루 최대 2시간까지 단축 근무가 가능하다. 임신 중 출장은 가급적 자제하도록 권고하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지원한다. 또 차로 출퇴근하는 임산부를 위해 사옥 주차장에서 발렛 주차 서비스도 제공한다.
다양한 가족 친화 시설 역시 네이버가 자랑하는 부분이다. 현재 서초, 분당, 수지 등 총 6곳에서 임직원 전용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개원한 판교 어린이집은 연면적 4603㎡, 정원 300여명 규모다. 설계 단계부터 국내외 사례를 분석해 다양한 공간 구성을 선보였다. 빌딩 숲 사이에 위치한 점을 고려해 오픈형 유리와 친환경 소재를 활용해 개방감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이 외에도 임산부 휴게실, 수면실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모유 유축기 등이 마련된 모자유친실은 대상자들만 태깅해서 출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편의성을 높였다.
탄탄한 가족 친화 제도는 여성 인재 양성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네이버의 여성 직원 비율(정규직 기준)은 41%를 기록하며, 2020년 36%에서 5%포인트 증가했다. 관리자급인 리더 비율도 2020년 24.5%에서 지난해 33%로 늘어났으며, 이 중 59%는 일과 자녀 양육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육아 휴직을 사용한 여성 직원의 복귀율도 96%에 달해 높은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내부에선 현 수준에서 만족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신과 출산을 배려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없앤 결과 사내이사, 사내독립기업(CIC) 대표, 사업 대표를 포함한 최고위급(C 레벨)에서 여성 비율은 다른 기업에 비해 높지만 정작 절대 수치로 보면 22%에 머물고 있다. 임원 비중이 10명 중 2명꼴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여성 직원에 대한 복지는 강하지만 임원 승진을 보면 여전히 갈 길은 멀다는 평가도 나온다.
관리자급이나 C 레벨까지 여성 비율을 늘리려면 여성 리더를 양성하는 제도나 문화를 갖춰야 한다. 최 대표와 채선주 대외·ESG정책 대표 등 사내이사가 모두 여성인 점 외에 사외이사에서도 여성 비중을 늘리거나 여성 리더 육성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통해 기업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제2, 제3의 최 대표를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