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이 창사 87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을 폐쇄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일단 독일정부의 개입으로 당장 최악의 대량해고 사태는 면하게 됐지만, 하루빨리 구조를 개선하지 못하면 폭스바겐 자체 존립이 위협받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반도체와 함께 자동차분야가 산업의 양대 축인 한국에서도 폭스바겐의 향후 변화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8일(현지시간) 독일 매체 빌트암존탁과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가 폭스바겐에서 일했던 직원도 있다. 나는 그들의 손자도 여전히 이곳에서 일할 수 있길 바란다"며 "그러나 현재 비용절감 방안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추가 긴축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그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독일 내 공장 폐쇄와 독일 내 임직원에 대해 2029년까지 적용된 고용보장제도의 폐기를 검토 중이라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그는 "자동차 산업이 매우 어렵고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새로운 경쟁자가 유럽 시장에 진입하고 있으며 독일은 경쟁력 측면에서 뒤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포괄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며, 공장 폐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발표 직후 폭스바겐 노조 뿐만 아니라 독일 정부까지 나서서 폭스바겐 경영진에 강한 압력을 행사했다. 독일 내 공장 폐쇄시 최소 2만명, 최대 12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발생하고 본사가 위치한 니더작센주의 경제가 완전히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일단 법인이 구매하는 전기차에 보조금 지급제도를 일부 되살려 폭스바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정도의 지원책으로는 폭스바겐의 수익성 악화 문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일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폭스바겐은 2023년 2분기 실적에서 매출액 833억 유로(약 123조7000억원)를 기록하며 전년동기대비 4% 증가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55억 유로로 2% 감소했고, 영업이익률은 6.6%로 0.4%포인트 하락했다. 미국과 서유럽 시장에서는 15%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지만, 폭스바겐의 주요 시장 중 하나인 중국에서 매출이 19% 급감하면서 전반적인 수익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폭스바겐의 전체 임직원 수는 68만명 규모로 글로벌 1위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의 38만명과 비교해 임직원 수가 약 30만명 이상 더 많다. 도요타는 폭스바겐보다 약 200만 대 더 많은 차량을 판매하고 있는 반면, 폭스바겐은 상대적으로 적은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거의 2배에 가까운 인력을 유지하고 있어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은 독일 정부의 긴급 개입으로 최악의 대량해고 사태는 막았지만, 정부의 잦은 개입이 오히려 폭스바겐의 구조개혁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폭스바겐은 표면상으로는 포르쉐의 지주회사인 포르쉐SE 산하의 민간기업이지만, 실제 지배구조 자체는 창립 때부터 늘 공기업 형태였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1937년 세워진 폭스바겐은 오스트리아의 공학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세운 자동차 기업이다. 그는 당시 집권 중이던 나치당 정권의 요청으로 중산층 가정이 구매 가능한 차량을 제작해 만들었고, 이 자동차에 '국민차'라는 뜻의 폭스바겐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 이 자동차의 이름이 그대로 회사명이 됐다. 2차대전이 발발한 1939년 이후부터는 나치 정권의 비호아래 탱크, 장갑차 등 군용차량을 수만대 생산해 전후 전범기업으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이후 1950년대부터 폭스바겐이 재건되는 과정에서 당시 서독 정부는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폭스바겐의 본사가 위치한 니더작센주 정부가 폭스바겐에 직접 투자해 현재도 지분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니더작센 주정부는 폭스바겐의 주요 경영 결정을 승인하는 데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한 1960년 독일 정부는 니더작센 주정부의 폭스바겐 출자금 보호를 명목으로 '폭스바겐법'이라는 특별법도 제정한다. 해당 법안은 폭스바겐의 주주총회 주요 의결사항에 대해 80% 이상이 찬성할 때만 가결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으며, 주요 대주주들의 의결권도 20%까지만 허용한 제도다. 니더작센 주정부가 반대하는 사안은 주주총회에서 통과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폭스바겐이 이번 공장 폐쇄를 고려하게 된 배경에는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의 부상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팔린 전기차 1400만대 중 950만대가 중국에서 판매될 정도로 중국은 세계 전기차 수요의 67%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현지 업체인 비아디(BYD)를 비롯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폭스바겐을 비롯해 서구권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전기차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애국소비 운동을 통해 자국 전기차의 내수 판매를 증진시키고 있다. 또한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주요 생산 공장이 중국에 집중돼 있어 중국은 전기차 부품 공급망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유럽과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폭스바겐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중국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구조조정과 생산 축소 등의 방법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2위인 폭스바겐의 위기는 국내 자동차 기업이자 글로벌 3위 현대자동차에 기회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 폭스바겐과 달리 중국 시장에서의 매출 부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2024년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은 361만대로, 폭스바겐 그룹의 434만대와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올해나 내년 중 폭스바겐을 제치고 2위 자리에 오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전기차 시장의 부상은 현대차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중국산 전기차는 가격 경쟁력이 매우 뛰어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안전성과 성능 면에서 차별화를 시도하여 중국산 전기차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한편으로 독일 국민기업인 폭스바겐의 구조조정 논란은 한국의 국민기업인 현대·기아차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1937년 창립 이후 사실상 독일의 국민기업이자 공기업 체제를 유지해 온 폭스바겐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해 나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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