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슈퍼 을' ASML이 미국 주도의 대(對)중국 수출 규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안보를 위해서라는 본래의 목적은 점차 잃어버리고 경제적 동기만 남았다는 지적이다.
4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뉴욕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 연설에서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일이라고 말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안보보다 경제적 동기(economically motivated)가 더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동맹을 향한 미국의) 수출규제 압박은 더 커질 테지만 반발도 그만큼 더 커질 것"이라며 "이제는 어느 정도 평형 상태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한 기업으로서 원하는 건 약간의 명확성과 안정성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중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 성장을 막기 위해 수년간 규제를 강화해왔다. 특히 반도체 장비 강국인 네덜란드·일본 등 동맹국에는 대중국 수출 통제에 동참할 것을 압박해왔다. 이 중 네덜란드의 ASML이 보유한 극자외선 노광장비(EUV)는 7나노 이하 미세공정 등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핵심 장비로 꼽힌다. ASML이 업계에 '슈퍼 을(乙)'로 불리는 이유다.
미국은 ASML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는 물론이고 기존에 판매된 장비의 유지·보수 서비스도 중단하도록 압박했으나 별다른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ASML의 지난 2분기 대중국 수출 금액은 23억유로(약 3조4700억원)로 전 분기 대비 21% 증가했고, 중국의 화웨이는 지난해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가 내장된 스마트폰 '메이트 프로 60'을 출시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이에 블룸버그통신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ASML과 도쿄일렉트론 같은 반도체 장비 업체에 대해 해외직접생산규칙(FDPR) 부과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기술 등이 조금이라도 사용됐다면 수출 시 미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조치다. 이 소식에 ASML은 지난 7월 예상치를 웃도는 2분기 실적을 내놓고도 약 2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주가 하락을 맞았다.
다만 ASML이 미국의 강력한 무역 제한 조치에 순응할지는 미지수다. 앞서 딕 스호프 네덜란드 총리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ASML의 대중국 수출 규제 강화 여부에 대해 "ASML의 경제적 이익(economic interests)을 매우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며 "ASML은 네덜란드에 매우 중요한 기업이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피해를 보아선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날 유로넥스트에서 ASML의 주가는 전장 대비 5.93% 내린 736.40유로에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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