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1200원대에 머물렀던 원·달러 환율이 올해 들어 1300원을 웃돌면서 환율 1300원대가 이른바 ‘뉴노멀’이 됐단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올해 연말까진 1200원대 환율을 기대하기 어려울 거라 보고 있다. 평균적인 환율 레벨이 올라갔을뿐더러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투자 규모도 늘고 있어 원화 약세 압력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13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15시30분 종가 기준)이 1200원대에 머문 건 작년 12월28일(1288원)이 마지막이다.
올해 환율은 1월2일(1300.40원) 1300원대에 시작했지만, 지난 4월16일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과 달러 강세로 장중 1400원을 터치했다. 이후 외환시장이 구두개입에 나서는 등 다소 진정세를 보인 뒤 현재는 1300원대 중후반에서 등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원화 약세가 지속되는 이유가 펀더멘털보다는 대외적 환경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 경상수지는 지난 6월 122억6000만달러 흑자로 역대 세 번째로 큰 흑자 규모를 기록했다. 상반기 경상수지도 377억달러로 지난해 상반기(11억5000만달러)와 비교하면 양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견조한 경상수지에도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건 미국 등 주요국 대비 상대적인 저성장, 저금리 때문이란 분석이다. 원화 강세 시기였던 2005~2007년(원·달러 환율 900~1000원 수준)엔 한국의 성장률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양호해 환율이 하락했다. 2013~2015년(원·달러 환율 1000~1100원 수준)엔 성장률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한국의 기준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아 환율이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일본 또한 엔·달러 환율이 100엔을 하회했던 2008년 말엔 미국보다 성장률이 높았고 기준금리 차이도 미국 0.1%, 일본 0.125%(2008년 12월 기준)로 거의 없었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000년대 들어 6개월 넘게 한국이 미국보다 성장도 약하고 기준금리도 낮았던 건 최근이 처음”이라며 “미국 대비 저성장, 저금리인 상황에선 우리나라의 펀더멘털이 절대적으로 회복돼도 원화 강세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를 벌어들이지만 상당 부분이 성장이 양호하고 고금리인 미국으로 다시 흘러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투자 규모가 커지는 점 또한 원화 약세에 영향을 주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과 자본시장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 규모는 작년 말 기준 8573억달러(약 1175조원)로 2010년 초(약 1000억달러)와 비교해 9배 가까이로 늘었다. 2015~2023년 중 해외증권투자 잔액은 연평균 18.1%의 증가율을 보였다.
최 연구원은 “과거엔 수출입을 비롯한 실물거래 관련 달러화의 수요, 공급이 외환시장 흐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며 “최근엔 자산을 사고파는 돈 거래 비중이 늘면서 경상수지만으로 환율을 설명하긴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환율 레벨이 1300원대 수준으로 올라가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최 연구원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선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해외투자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평균적인 환율 레벨 자체가 올라가 있는 상황이지만, 레벨이 오르더라도 환율 상승폭이 크지 않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환율 레벨이 1300원대로 올라가더라도 속도가 점진적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최근 엔·달러 환율이 160엔에서 140엔으로 급락하는 등 변동성이 크면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올라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새로 형성된 환율에 경제 주체들이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이 충분하다면 괜찮다”고 설명했다.
연말까지 환율은 1300원대 초중반에 머물다 내년 중반 이후 최대 1400~150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 연구원은 "선진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으로 해외로 자금이 유출되고 있어 구조적으론 미국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으론 원·달러 환율이 떨어질 수 있지만 내년 중반 이후부터는 재화수요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면서 1400~1500원대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환율이 1400원대까지 오르는 건 과도하다는 평가도 있다. 최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향후 몇 년간 1200~1300원대에서 머물고 내년 1분기까지 하방은 1250원쯤이 될 거라 본다"며 "환율이 1400원을 상회하려면 달러가 큰 폭으로 강세를 보이거나, 엔화나 위안화가 크게 약세로 가는 등의 이슈가 겹쳐야 한다"며 "현재 일본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낮아졌고 중국은 하반기에 소비 위주로 경기가 좋을 거라 보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원화가 더 튀어 오를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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