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진화하는 커뮤니티, 가로막힌 공공보행통로

개포 디에이치아너힐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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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출입구에는 입주민 출입증을 찍어야 진입할 수 있는 철제 담장이 있다. 인근 래미안블레스티지도 2019년부터 출입구마다 철제 담장을 설치했다. 두 곳 모두 공공보행통로가 있지만 이 담장으로 입주민 외에는 이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공공보행통로는 아파트 단지 내부에 있지만 입주민이 아닌 외부인도 지나갈 수 있도록 조성한 보행로를 말한다. 개포 뿐 아니라 반포, 장위 등 여러 단지에서 외부인 출입을 막는 담장들이 설치돼있다.


서울의 주요 대단지 아파트들이 외부인 출입을 막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아파트 단지들이 외부인의 진입을 막고 커뮤니티 시설을 특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일명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단지 내 커뮤니티시설이 다채로워질수록 외부인을 향한 진입장벽은 더 높아졌다. 입주민이 아닌 주민들은 시설 이용을 차치하더라도 단지 진입이 막혀 큰 단지를 돌아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된다.

주민공동시설 개방을 조건으로 용적률 혜택을 받고 약속을 어기는 사례가 늘자 서울시는 지난 7일 ‘주민공동시설 개방 운영기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아크로리버파크, 원베일리 등 31개 단지에 시설 개방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행정조치를 강화하겠는 내용이다. 아쉬운 점은 이번 방안에 공공보행통로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공보행통로 외부인 진입 통제를 놓고 사유지이므로 가능하다는 입주민들의 논리, 공공성을 갖기 때문에 개방해야한다는 공공의 논리가 맞선다. 통상 공공보행통로는 통학로로 활용되거나 기존에도 주거단지에서 사람들이 통행하던 길인 경우에 지정된다. 시는 공공보행통로를 설치할 때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주지 않았던 단지에 개방을 강제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한다.


서울시의 한 도시계획위원은 "공공보행통로는 인센티브와 상관없이 공공의 필요에 의해 정해졌는데 사유재산으로 보느냐, 기존에 통행했던 길로 공공성을 인정하느냐를 두고 입장 차이가 있다"면서도 "어떤 부지도 공공적인 맥락에 놓여있던 전통이 있다면 공공성을 부여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공간 구조가 일찌감치 설계된 서구권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인정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공공보행통로 이용을 막는 아파트 입주민에게 개방을 강제할 법적 장치도 미약하다. 국토계획법에서는 공공보행통로를 개방하지 않는 단지를 고발할 수 있고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명시돼있다. 벌금 100만원을 내고 여전히 출입구 담장을 유지하는 단지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토부에 국토계획법상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여러차례 요청했지만 안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공공보행통로가 막히면 이웃 주민들은 보행권을 침해받는다. 어린이들의 통학시간이 길어지고 노약자들이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지난해 서울시는 ‘공동주택 허용용적률 인센티브 개정안’에서 공공보행통로를 설치할 경우 10%p 이내에서 용적률을 상향해주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 인센티브를 적용 받아 공공보행통로를 설치하는 단지들이 늘어나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 단지 내 주민들이 주장하는 보안에 대한 우려나 사유재산권 침해 주장에 ‘설득’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 법 개정을 통한 이행강제금 부과든, 공공보행통로 운영 기준을 마련하든,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모두가 살기 편한 도시가 좋은 도시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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