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8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공원 뒷골목은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에도 노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채 삼삼오오 모여앉은 노인들이 부채질을 시작했다. 일부 노인들은 가로등을 불빛 삼아 장기를 두는 데 열중했다. 탑골공원 울타리를 따라 길게 늘어선 간이 테이블은 흡사 야장 거리를 방불케 했다.
종로구 사직동에 거주 중인 김모씨(73)도 더위를 피해 이곳을 찾았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동네 경로당은 오후 6시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김씨는 "집은 선풍기 한 대뿐이라 가만히 있어도 방안이 푹푹 찐다"며 "그나마 바깥은 바람이라도 통하겠다 싶어 저녁마다 골목으로 온다"고 말했다.
서울에 최저기온이 25도를 넘어서는 열대야가 연일 지속되면서 더위에 지친 노인들이 길거리로 모이고 있다. 서울시가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엔 무더위 쉼터를 연장하기로 했지만, 노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길거리에서 폭염과 싸우고 있다.
이날 탑골공원 일대에는 문을 닫은 관공서 출입구에 누워있는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공원 인근 우체국 앞에는 노인 두 명이 돗자리를 깔고 밤잠을 청하고 있었다.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70대 노인 한 명이 "더워 죽겠다"며 몸을 일으켜 부채질을 시작했다.
이곳에 모인 노인들은 갈 곳이 없어 골목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왕십리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왔다는 이모씨(78)는"집 에어컨은 고장 났는지 바람이 시원찮다"며 "낮에는 경로당이나 우체국을 왔다 갔다 하는데 밤에는 집에만 있으려니 숨이 막힌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는 이 같은 문제를 고려해 폭염특보가 발효된 날엔 무더위 쉼터를 연장 운영하기로 했다. 평시 운영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지만, 연장 쉼터의 경우 폭염특보 발효 시 오후 9시까지 운영된다.
그러나 일부 쉼터는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닫혀 이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실제로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7일 오후 8시30분께 찾은 종로 1·2·3·4가동 행정복지센터는 1층 출입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이곳은 종로구 연장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곳 중 하나다.
이뿐만 아니라 쉼터가 연장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노인들도 다수 있었다. 종로구에 거주 중인 김모씨(80)는 연장 무더위 쉼터를 아냐는 질문에 "낮에 노인들이 덥다고 경로당 대신 자주 찾는 곳을 알고 있긴 하다"며 "그곳도 경로당 시간에 맞춰 문을 닫지 않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는 노인의 눈높이에 맞는 홍보와 접근성, 두 가지를 고려한 폭염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르신들이 쉼터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동네 통장 등 지역 내 오프라인의 커뮤니티를 통한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며 "온라인 홍보는 한계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막상 쉼터를 열어도 어르신이 무더위에 지쳐 쉼터까지 가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며 "이분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접근성 좋은 곳에 쉼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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