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8일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행보에 역행하는 기업들의 행보를 지적하며 "지배주주 이익만을 우선하는 경영 사례가 여전히 반복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질타했다.
이 원장은 8일 23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기업들의 철저한 인식 전환을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와 관련해 원칙 중심(Principle-based)의 근원적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최근 시장에선 두산그룹이 계열사 간 지배구조 개편을 실시하며 논란이 일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 전량(약 46%)을 보유한 투자회사를 인적분할한 뒤 이를 두산로보틱스와 합병시킨다는 내용의 개편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잔여 두산밥캣 지분을 포괄적 주식교환으로 취득한다. 이 과정에서 '알짜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의 합병비율이 불리하게 산정되면서 소액주주들이 큰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감원 역시 두산 측에 증권신고서 정정 요청을 하며 합병 시너지를 소상히 밝히라고 주문했다.
이 원장은 이날 자본시장의 핵심 투자 주체인 자산운용사의 적극적인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며 ▲수탁자 책임 등 의결권행사지침(스튜어드십코드) 이행 ▲내부통제 등 시장 질서 확립 ▲상장지수펀드(ETF) 경쟁 건전화 등 건전 성장 도모 등 세 가지 당부사항을 전달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기관투자가의 원칙이다.
그는 또 "기업지배구조 선진화는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가치와 규범인 '문화(文化)'로 정착돼야 할 사안"이라면서 "이를 위해 8월과 9월 중 간담회, 열린토론회를 개최해 자본시장 선진화에 필요한 공감대를 본격적으로 형성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자산운용사 CEO들도 기업지배구조 개선, 밸류업 등 자본시장 선진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 및 건의 사항을 전달했다. 운용사 측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 등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다만 일부 운용사의 경우 기업 측이 우려하는 사항도 감안하여 추진할 필요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운용사들은 금융투자소득세와 관련해서는 투자자들의 국내 투자 위축,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자금 이탈, 펀드런 등 부작용이 예상되므로 '폐지'가 필요하다는 데 주목했다. 또 공모펀드 시장 활성화를 위한 펀드 가입 절차 간소화, 장기투자 세제 혜택 부여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당국에 전달했다. 외국계 운용사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국내 진출·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요청했다.
이 원장은 "향후에도 운용업계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이번 간담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감독업무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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