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만 해도 한국 여성들의 장래 희망 높은 순위에 ‘현모양처’가 있었다. 안우경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석좌교수는 그 시절, 고정관념을 깨고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안 교수는 모교에서 강의하고 싶었지만,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교수들이 반대했던 이유는 ‘여교수가 학과에 이미 한 명 있다. 여자는 한 명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안 교수는 더 넓은 무대에서 더 큰 일을 해냈다. 안 교수는 2003년 한국인 최초 아이비리그 대학 심리학과 정교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학생들의 평가로 가장 우수한 강의를 한 교수에게 수여하는 예일대 ‘렉스 힉슨 상’도 최근 수상했다. 지난해 강의를 바탕으로 한 저서 ‘씽킹 101(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하기 연습)’을 펴내자 다니엘 핑크, 그레첸 루빈, 폴 블룸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줄이어 추천했다. 일을 하면서도 안 교수는 남편과 함께 가정을 순탄하게 꾸려 나갔다. 그의 남편은 예일대 최초 아시아인 학장을 역임한 천명우 교수다. 양육을 반반 나눠서 했던 부부는 딸에겐 천 교수의 성(姓)을, 아들에겐 안 교수의 성을 각각 물려줬다.
안 교수는 인생에서 이룬 가장 큰 성취로 ‘포기할 줄 아는 자신감’을 꼽았다. 안 교수는 "목표를 제대로 추구하려면 제대로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에서 학부를 마치고 유학길에 올랐고,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아버지가 교수였기 때문인지 교수직에 끌려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 당시 다양한 커리어 옵션을 고려했어야 했지만, 여성이어서 확실히 제한은 있었다. 이후 한국에서 교수가 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웠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연세대 심리학과 동기 중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친구가 있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수 임용이 안 됐다. 그 친구는 전국에 있는 여러 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했다. 기름값도 못 벌고 다니다가 교통사고로 고속도로에서 사망했다.
-당시 미국은 우리와 상황이 달랐나.
△미국에 40여년 살면서 심리학계 내에서 여성이라서 불리하게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예일대 조교수에 임용된 후에 약혼자(지금의 남편)도 인지심리 교수 자리에 지원했다고 하니까 당장 인터뷰를 해서 조교수 자리를 그 사람한테도 내어주었다. 1996년이었는데 예일대를 포함해 세 군데 학교에서 부부 교수로 일할 수 있도록 자리가 나왔고, 그 이후에도 여러 명문대에서 부부 교수로 자리가 나왔었다.
여성 차별 문제를 잘 생각해보면, 차별당하는 여성한테 물론 피해가 가지만 궁극적으로는 차별하는 사람한테도 피해가 간다. 여성보다 능력이 부족한 남성을 남자라는 이유로 고용하면 고용주한테도 당연히 손해가 가는 것이다. 더 크게 나아가서 사회 전반에도 피해가 간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과학자 대다수가 여성이었다. 그분들이 여성이라서 교수직이나 연구직에 자리가 없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을 잃었겠는가. 여성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편견이 다 같은 이치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이 아직도 큰 문제인데, 시티그룹에서 계산한 바로는 흑인을 차별하고 그 재능을 적재적소에 쓰지 못해 미국이 손해를 본 액수가 16조달러(약 2경2000조원)라고 한다. 편견이나 선입견 때문에 개개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사회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 제외하면 그 편견을 가졌던 사람이 결국에는 손해를 보고 만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면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언어의 장벽이 있었다. 남들보다 읽거나 쓰는 속도가 3~4배 느리고, 세미나에서 두서없이 논의하면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박사 후 연구원으로 가서는 생전 처음 강의하게 됐는데 일주일에 3시간 하는 강의를 위해서 40시간을 준비했다. 그런데 모든 장점이 약점이 될 수 있고, 약점이 장점이 될 수 있다. 언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강의나 논문 발표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 농담이나 예시까지도 열심히 모으다 보니까 오히려 명강의로 학교에서 상도 받고, 강연 초청이 학계 밖에서도 꽤 들어온다. 지난달 변호사와 판사 350여명 앞에서 생각의 오류에 대해 강의를 했는데 연습하는 데에만 일주일이 걸렸지만, 최고의 강연이라는 피드백을 받아서 보람을 느꼈다.
-장점이 약점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책에도 소개한 편향을 한마디로 집약하자면 요즘 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만감)’이다. 그중에서도 유창함이 일으키는 착각은 장점을 약점으로 만드는 경우다. 자신이 잘하는 것이 있으면 별로 준비하지 않아도 유창하게 잘 할 것 같이 느껴져서 자만하다가 막상 실전에서는 준비하지 않은 값을 치르는 것이다. 저보다 영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언어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준비를 제대로 안 해서 중요한 인터뷰에서 큰 실수를 하는 것을 자주 봤다.
유창함의 편향을 피하는 첫 번째 단계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완전히 인정해야 한다. 저는 20~30년 동안 해온 강의라도 직전에 1~2시간에 걸쳐서 목소리를 높여가며 혼자 연습하고 들어간다. 또한 세상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 혹은 정도에 따라 가치가 변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맛있는 케이크라도 배가 부르면 맛이 없다. 분석력과 비판력이 뛰어난 것은 연구할 때 매우 도움이 되는 저의 장점이지만, 극도의 분석과 비판력으로 가족이나 친구들을 대하면 큰일이 난다. 간단한 규칙 같은 것을 정해도 좋다. 제 경우엔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가족들에게 칭찬을 한마디씩 하는 것을 규칙으로 정하고 산다.
안우경 예일대 심리학과 석좌교수가 2006년 가족들과 함께 여름 뉴욕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놀러 갔을 당시 건물 옥상 정원에서 남편이 찍어준 사진이다. 사진 속 딸은 7살, 아들은 4살이었다. 안 교수는 "아이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러 가는 것이 뉴욕 카네기 홀 음악회에 가는 것보다 재밌었고, 로봇 만드는 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매운 닭 요리를 해주고 나사와 톱밥으로 덮인 응접실을 청소하는 일이 미쉐린 식당에 가는 것보다 좋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안우경 교수)
원본보기 아이콘-미국에서 일하면서 두 자녀를 키웠는데 힘이 들지는 않았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일과 양육을 나의 취미 생활, 인간관계의 전부로 압축했다. 아이들이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오후 5시까지는 일할 수 있었고 주말엔 운전사 노릇을 하면서 아이들이 하는 활동을 구경했다. 방학 때 여행 가는 것도 아이들 위주로 했는데 웬만한 취미 생활보다 재밌었다.
-남편도 심리학 교수인데, 집안일을 어떻게 분담했나.
△요리는 주중에 저녁 한 끼만 제가 했고 설거지는 남편이 전담했다. 아이들의 학교 외 활동은 일대일로 나는 바이올린 하는 딸 담당, 남편은 로봇을 만드는 아들을 담당했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아이들이 혼자서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등하교 운전을 해주는 일이 큰 과제였는데, 아침엔 남편이 오후엔 내가 담당했다. 아이 낳기 전, 예일대에 있는 시니어 여자 교수님께서 가정과 커리어를 둘 다 병행하는 비법은 ‘남편을 잘 만나는 것’이라 하셨는데, 진리다. 남편이 내 커리어를 봐주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지원해줘서 모든 일이 가능했다. 어떨 때는 나보다도 더 내가 잘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자녀들의 성을 다르게 지은 이유는.
△엄마, 아빠한테서 유전자를 똑같이 나눠 받는데 한 명의 성을 택함으로써 아빠 쪽 가족하고만 연결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엄마와 아빠 성을 합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성이 끝도 없이 길어지니까 그냥 하나씩 줬다. 두 아이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다 같은 학교를 나왔는데 성격이나 생김새가 아주 달라서 남매인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주위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아이들한테는 언제든지 성을 바꾸고 싶으면 바꾸라고 했지만 안 바꾸겠다고 한다.
-저서 ‘씽킹101’ 내용 중 성별 임금 격차 관련 연구가 나온다. 고정관념이 큰 이유였다. 편향적 사고를 덜 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사람이 위협을 느끼면 남을 차별하려는 경향이 커진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직업을 빼앗는다고 생각한다든지, 난민들이 사회 문화를 흐리고 범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하면 차별하고 배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차별을 하면 차별을 하는 사람도 손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위협감을 줄이기 위해 빈부의 차를 줄이면서 인간의 의료와 교육을 포함한 기본 생활이 보장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은 햇빛도 잘 들지 않고 가장 부유하지도 않지만,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북유럽이다. 이제는 전반적으로 삶의 유동성이 많아졌고,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면서 고정된 생각을 갖게 되는 집단에 대한 개념이 많이 깨지길 바란다.
안 교수는 "자신이 세운 목표가 자신의 역량에 맞는 것인지 항상 재정비하고, 목표가 너무 높아서 지금 생활이 너무나 고통스러우면 그 목표 포기하고 더 적당한 목표를 정해야 한다"면서 "반대로 현재의 목표가 자신의 역량을 전적으로 발휘하기에는 너무 작은 그릇이면 그 목표가 더 안전해 보여도 포기하고 더 높은 도전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문제는 어떤 이유이건 하던 것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면서 "또 자신이 어떤 사람인 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안우경 교수)
원본보기 아이콘-지금까지 성취한 일 중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포기할 줄 아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나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과의 관계를 멀리할 수 있는 용기,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왔지만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연구 프로젝트를 접는 결정력. 물론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전부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젊었을 때는 불안감 때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나 프로젝트들을 ‘혹시나’ 하면서 질질 끌었던 경우가 많았다. 그에 따른 기회비용으로 다른 더 좋은 기회를 잃고 있을 수도 있다. 인생에서 조금씩 성공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감을 키워나가면서 지금 당장 이것을 포기해도 새로운 좋은 일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 같다. 하던 것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고, 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다. 저도 자신감이 생기는 데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 10~15년은 더 걸렸던 것 같다.
-여성 선후배들 그리고 워킹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특히 여성들은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제가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한창 힘들어하자 어느 미국 친구가 ‘너는 이기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나쁜 의미에서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너의 인생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지, 왜 그렇게 남의 눈치를 보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의무감으로 사느냐는 의미였다. 당시만 해도 꽤 제가 독립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래서 가끔 제가 하는 일이 해야 해서 하는 것인지, 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해야 해서 하는 일도 하다 보니 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로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드는 일은 요령껏 현명하게 정리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할 시간이 생긴다. 그게 과정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안우경 교수는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석좌교수. 1963년생으로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캠퍼스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 교수가 진행한 ‘싱킹(Thinking)’ 강의는 예일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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