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의대 증원분을 학교별로 배정한 지난 5월 말, 정부 고위관계자는 “체념하고 돌아오는 전공의에게 혜택을 주면 집단행동은 힘을 잃을 것”이라고 필자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전공의는 꿈쩍 않았고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정부는 22일 시작된 ‘가을 턴(9월 전공의 모집)’에 지방병원 사직자의 서울 대형병원 이적까지 허용하며 복귀를 유도했으나 역시 희망으로 끝날 듯하다. 전공의는 무반응이고 의료계는 어깃장을 놓는다. 서울대·부산대병원 등은 찔끔 눈가림 모집 신청했다. ‘빅5’ 의대 교수들은 타 병원 출신 가을 전공의 수련을 거부했다. 진료 정상화는 외면하고 제자만 챙기는 카르텔이 끝을 모른다.
본지가 취재해보니 올 2~4월 사망자 수가 작년 동기보다 7% 늘었다. 월별 사망자는 지난해 12월과 올 1월까지 작년보다 3.2%, 0.5% 감소하다가 의료 사태가 시작된 2월부터 증가했다. 의료 공백으로 중증질환 진료가 줄어든 영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히포크라테스를 잊어버린 의료계의 집단 이기주의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개혁의 직접 정책대상자인 의사 집단을 숙적으로 만들어 갈등의 싹을 키운 정부의 실패도 지적받아야 한다. 실패의 근본 원인부터 복기해야 만회가 가능하다.
근원은 의료계의 오랜 정부 불신인데 정부가 자초한 면이 있다. 필자가 2000년 의약분업을 취재하면서 “건강보험 지출이 폭증한다”는 의료계 주장을 귀에 못 박히게 들었다. 정부 관료에게 물어보면 “그럴 일 없다”고 일축했다. 건보 지출은 의약분업이 전면 시행된 2001년 폭증했다. 그러자 정부는 이듬해 의료수가를 2.9% 삭감했다. 이 칼질을 눈으로 본 전공의가 지금 50대 의대 교수다.
올해로 돌아오면 의료계는 의대 증원은 건보 지출을 폭증시킨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아니라고 한다. 이러니 의사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가 줬다가 뺏을 사탕을 흔든다고 본다. 기획재정부는 보건복지부의 의료사태 3차 예비비 요청을 이달 초 거부했다. 그러니 전공의 수련환경개선, 필수의료수가 인상은 전공의가 돌아가면 없던 일이 될 것이라고 의사들은 의심한다.
정부는 의료계를 달래서 정책의 틀 안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들고 호소하며 기다리는 전략은 무효과로 확인됐다. 정부가 먼저 움직여서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 “무슨 돈으로 필수의료를 살릴 것인가”라는 의문에 행동으로 설명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복지부는 의료개혁 재정투자 로드맵을 내달까지 내놓겠다고 했다. 로드맵만으론 돈이 생기지 않는다. 복지부와 기재부는 필수의료 지원 예산을 빠짐없이 편성하고 가을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여야를 설득해야 한다. 건강보험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면 건보료율 상한선을 높이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에 착수해야 한다. ‘의대 증원은 동의하지만 건보료는 인하하라(경총·2024 건강보험 현안 인식조사)’는 국민 설득도 병행해야 한다. 교육부도 내년 증원분 교육 투자에 바로 나서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관계 부처 장·차관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재원 확보를 위해 뛰면 의료사태 수습의 실마리가 풀린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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