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오늘부터 나를 고쳐 쓰기로 했다<3>

편집자주나를 고쳐 쓰는 두 번째 단계는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별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을 붙들고 걱정하는 대신 현실적인 방안을 찾고, 스스로 기운을 북돋울 만한 이런저런 궁리를 해 보기로 한다. 이를테면 미라클 모닝에 수없이 실패하며 자책하기를 멈추는 대신, 푹 자고 일어나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집중해서 쓰는 것이다. 늘어지고 가라앉기 쉬운 일상을 관리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습관과 루틴을 장착했다. 아침을 여는 시 낭송, 불안과 조급함을 가라앉히는 필사, 식후 스쾃, 옥상 텃밭 가꾸기, 맨발 걷기, 독서 모임 등은 좋은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고 달성하는 데에도 단단한 밑거름이 됐다. 글자 수 1039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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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의 산책은 5분이 적당하다. 매일 하려면 부담스럽지 않아야 하니까. 하루에 30분씩 필사를 하겠다고 하면 일주일도 버겁게 느껴지지만, 5분은 ‘바빠서’라는 핑계를 대기도 민망한 시간이다. 한 단락 정도 필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내 하루에서 따로 빼 두는 것이 시작이다.


장비를 잘 갖추면 필사가 더 즐겁다. 나는 마음에 쏙 드는 필감을 찾을 때까지 여러 가지 필기구를 사용해 보며 노트와 만년필의 궁합을 찾았다. 노트를 펼치면 매끄럽고 질 좋은 하얀 종이가 환하게 나를 맞이한다. 마치 아무도 밟지 않은 눈처럼 보기만 해도 설렌다. 그 위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는 만년필의 발자국. 나는 밤마다 종이 위를 사뿐히 산책한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은 흔치 않은 만큼 소중하다.

필사하고픈 마음을 돋우는 공간도 중요하다.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를 정해 두면 고민할 필요 없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전에는 거실 바닥에 누워서 필사했는데,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면서 공간을 따로 꾸몄다. 침실 옆에 딸린 작은 베란다에 바 테이블과 의자를 놓았다. 오직 필사를 위해 기획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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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를 하면서 나는 많이 차분해졌다. 익숙한 키보드를 사용하다가 주의를 기울여 손으로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일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급하게 썼다가는 철자를 틀려서 다시 써야 한다. 촉이 민감한 만년필로 획을 그을 때는 손에 들어가는 힘이나 속도도 일정하게 신경 써야지, 안 그러면 번지거나 글씨 모양이 어그러진다. 5분 동안 책과 노트 사이에서 시선을 왕복하며 한 글자씩 옮겨 적는 일은 느리지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숨 가쁘게 달려 온 오늘 하루, 불안하고 조급하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아침형 인간은 모닝 필사로 하루를 열 테지만 올빼미인 나는 필사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하자 하루를 돌아보며 느끼는 아쉬움이나 자책이 가라앉았다. 내가 비록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종일 누워 있었지만 그래도 필사 하나만큼은 해냈구나. 그래, ‘해냈구나’라는 말은 위안이 됐다. 작은 성취가 주는 안도가 나를 좀 더 느긋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김선영, <오늘부터 나를 고쳐 쓰기로 했다>, 부키, 1만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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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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