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따라하기의 씁쓸한 결말…한국형 정책 호소하는 청년들 [청년고립24시]

<5> 한국 정책 3無의 한계
③3無: 한국형 맞춤 정책
고립·은둔 탈피 의지 높은 韓
日·英과 다른 한국만의 정책 만들어야

"제힘으로 돈을 벌어서 살고 싶습니다. 부모님 등골 빼먹지 않고 편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20대 은둔 청년 가명 '신길'

"10년 넘게 은둔하는 기간에도 홀서빙 아르바이트, 주방 보조 등 단기 아르바이트는 꾸준히 해왔습니다." -30대 여성 가명 '뀨'


한국의 고립·은둔 청년들은 평소에는 숨어 있다가도 돈벌이를 위해서는 집 밖을 나선다. 흔히 은둔형 외톨이의 표상으로 불리는 일본의 '히키코모리'와는 사뭇 다른 특성이다. 일본의 경우 은둔형 외톨이 대부분은 사회·경제활동을 단절·단념하고 수십 년씩 은둔 생활만 한다. 은둔한 채로 50대가 된 자식을 80대 부모가 부양하는 현상이 사회문제로 제기될 정도다. 정부의 여러 정책을 경험한 은둔 청년들은 영국, 일본 등에서 본따 만든 정책이 아닌 한국형 맞춤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아시아경제는 [청년고립24시] 취재 중 3월 22일 서울 은평구 소재 고립·은둔 청년 쉼터 '두더집'에서 은둔 청년 5명과 좌담회를 진행,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좌담회에 참여한 청년들의 이름은 두더집에서 사용하는 가명으로 표기했다.


은둔청년을 위한 공간인 사단법인 씨즈에서 열린 좌담회.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은둔청년을 위한 공간인 사단법인 씨즈에서 열린 좌담회.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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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 참가자 전원은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등 단기 일자리 경험을 갖고 있다. 은둔 기간 월세를 내지 못할 때나 부모님에게 차마 손을 빌릴 수 없을 때 스스로 돈을 벌러 나간다는 것이다. 20대 은둔 청년 '3352'씨는 "두더집에 오기 전에는 콜센터에서 텔레마케터 일을 했다"며 "이후에는 주민센터에 찾아가 공고를 확인하고, 공공근로 등 그때그때 뜨는 지원 사업 등을 신청하면서 가끔 일을 했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사회 복귀에 대한 의지가 있으신 것 같다"는 말에 참가자 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이들은 자기 계발과 취업에 대한 강한 욕구를 보였다. 신길씨는 정부의 일자리 프로그램과 더불어 자아실현을 위한 일을 병행하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웹소설을 쓰고 있는데, 1월부터 유료구독 체제로 전환해 3월까지 6만원을 벌었다.

20대 남성 '한쇼'씨는 박물관 견학이라는 취미를 살려 곳곳의 박물관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병행하고 있다. 그의 제1 목표도 마찬가지로 취업이다. 3352씨도 "결국 지원을 받거나 하더라도 어디까지 자립을 위한 것이다. 내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최초로 진행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서 고립·은둔 청년 80.8%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도 '경제적 지원(88.7%)'에 이어 '취업 및 일 경험 지원(82.2%)'이 두 번째로 높았다. 구직뿐 아니라 경제활동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만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 편성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은둔청년을 위한 공간인 사단법인 씨즈에서 열린 좌담회.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은둔청년을 위한 공간인 사단법인 씨즈에서 열린 좌담회.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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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에 참여한 고립·은둔 청년들은 먼저 일자리에 초점을 맞춘 고립·은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구직 과정에서 연이은 취업 실패가 고립의 계기가 되고, 취직 이후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부적응이 이를 재고립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사다리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에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국민취업제도나 공공근로 사업 등 단기 일자리 프로그램이 있지만 고립·은둔 청년을 타깃으로 한 취업 제도가 없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한쇼씨는 "휴대폰 액세서리를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다만 기간이 끝나면 경력도 못 살리고 그냥 내 일자리도 거기까지"라며 "경력도 이어가고 최종적으로는 취업과 연계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은둔·고립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안 무서운 회사'의 소개글.(사진출처=안 무서운 회사 홈페이지)

은둔·고립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안 무서운 회사'의 소개글.(사진출처=안 무서운 회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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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립·은둔 청년들은 일자리만큼 일자리에 적응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이나 기관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고립·은둔 청년의 사회 적응을 돕는 사회적기업 '안 무서운 회사'가 대표적이다. 사무보조, 영상 편집, 마케팅 등 일반 기업의 업무와 비슷한 일을 맡겨 청년들의 적응을 돕는 곳이다. 대신 일을 빨리하지 못한다고 다그치거나 명령하지 않고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이들을 기다려준다.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게 만드는 작업이다.


신길씨는 "일단 안 무서운 회사와 비슷한 형태의 플랫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적응 중에 발생하는 실수에서 덜 두려워할 수 있는, 실제 취업 전 단계의 안전장치가 가장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개별적으로 발신하는 정보를 하나로 묶어줄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고립·은둔 청년들 대부분 외부 활동이 많지 않다 보니 모든 정보를 온라인에서 찾게 된다. 하지만 채용 공고 등이 올라오는 홈페이지 '복지로' 등은 상시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불편이 크다. 은둔형 외톨이 출신 청년이 청년재단과 손을 잡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자체 홈페이지 '솜사탕'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왼쪽)와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심리상담학과 교수.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왼쪽)와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심리상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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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日은 모방에 그치지 말고 한국형 정책 내놓을 때
전문가들은 한국 실정에 맞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청년의 고립·은둔 문제를 먼저 인식, 고민한 일본이나 영국의 정책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와 실정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1970년대에 히키코모리라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했고, 1990년대부터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 문제가 된 히키코모리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이에 일본에서 시도한 다양한 정책과 대안이 국내에도 도입됐으나, 문화·인식차로 인해 청년의 고립·은둔 양상이나 특성이 달라 실패한 사례가 연이어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1989년 일본에서 설립돼 2012년 한국에 지사를 냈던 은둔 청년 지원 단체 'K2인터내셔널'을 언급했다. 이 단체는 등교 거부 학생이나 은둔 청년이 함께 공동 생활하는 셰어하우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한국의 은둔 청년들은 일일 아르바이트로 월세를 충당하면서까지 1인 가구 생활을 이어간다는 특성을 간과했다. 이로 인해 공동 주거를 계기로 사회 활동을 확대해 은둔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대책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결국 코로나19를 거치며 폐업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본은 히키코모리가 오랜 사회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책적 연구가 활발하지 않다. 현재 50대 히키코모리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20대였을 시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어 "영국이나 유럽도 외로움을 주제로 정책을 펼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영국도 외로움부를 설치하고 장관을 뒀지만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정책보다는 사회 캠페인 등에 주력하고 있다"며 "고립에 집중하는 우리나라와는 방향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핵가족화가 많이 진행됐고, 친구와 또래집단이 너무 좁아진 상태다. 외로움에서 은둔으로 갈 가능성이 우리나라는 너무 크다"며 "개인주의를 품는 새로운 공동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쟁 대신 소통과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나라의 국운을 걸고 해야할 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결국 그동안 고립·은둔 정책 선진국으로 불렸던 일본이나 영국도 사실은 대부분 정책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팬데믹 이후 외로움과 고립에 대한 문제가 모두의 일상에 스며든 가운데, 이에 가장 효과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나라가 결국 모범사례국으로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사단법인 파이나다운청년들 이사장을 맡은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심리상담학과 교수는 "가족주의와 집단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성취가 곧 가족의 성취가 된다. 자녀가 대학을 잘 가면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지만 고립·은둔에 들어가면 집안의 수치가 돼버린다"며 "한국의 고립·은둔은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무너지고 죄인이 되는 특징이 있다. 부모에 대한 지원과 함께 부모를 지렛대로 청년들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지원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둔청년을 위한 공간 사단법인 씨즈.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은둔청년을 위한 공간 사단법인 씨즈.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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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일본 따라하기의 씁쓸한 결말…한국형 정책 호소하는 청년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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