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부산은 제조업의 메카로 갑부가 넘쳐났다. 부산역에 내리면 바로 보이는 까마득한 언덕위의 집. 그곳에서 멀리 있는 사립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던 소년은 생각했다. '친구들 집에는 배도 있고, 공장도 있고, 냉동창고도 있는데 왜 우리 집엔 없지? 장난감보다 생산수단이 갖고싶다.' 이 소년은 자라서 '한국의 버핏'이라 불리며, 펀드 누적수익률 1200%를 기록한 자산운용사의 대표가 된다. 국민연금과 고액자산가들이 돈을 가져와 맡기는 국내 대표 가치투자자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다.
최 대표가 지난 2월 출시한 첫 공모펀드인 'VIP The First'는 출시 첫날 300억원이 몰려 '완판'됐다. 4월 출시한 두 번째 공모펀드인 'VIP한국형가치투자'에는 출시 한달 만에 500억원 넘는 돈이 몰렸다. 최근 2년간 신규 설정된 국내 주식형 액티브 펀드 29개 중 설정액이 500억원을 넘어선 것은 VIP한국형가치투자가 처음이다. 불안정한 투자 환경에서도 이 펀드들이 인기를 끈 것은 VIP자산운용이 20년간 입증한 운용 능력 덕이 크다. VIP자산운용의 현재 운용자산 규모는 약 3조원이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가 20년간 운용한 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1210.5%에 이른다.
최 대표의 투자 스토리는 사립학교를 다니던 어린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는 사립학교를 다니면서 '기업을 소유한 자'와 '기업을 소유하지 못한 자' 간의 철저한 괴리감을 경험했다.
"제 아버지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셨어요. 그런데 교육열이 높아 부산의 한 사립초등학교에 저를 보내셨죠. 우리 집이 절대 가난한 집이 아닌데 상대적으로 너무 가난하게 느껴지는 거에요. 지기 싫어하고 그런게 있어서 '공부라도 잘해야지'하고 공부에 집착을 했는데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병이 났어요. '자본을 갖고 싶다' 관심이 계속 그쪽으로 갔어요. 당시 대기업 회장님들이 책도 많이 내셨거든요. 읽으면서 나는 내 사업을 해야겠다 생각했죠."
언덕위의 집까지 매일 600개의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사업가의 꿈을 키운 소년은 1996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많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 워런 버핏의 '마이더스의 손'과 가치투자 창시자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접했다.
"내가 라면 회사를 창업할 순 없지만, 농심 주식을 사면 라면 사업을 하는 것이구나. 게다가 1등 회사, 제일 좋은 회사를 알아보는 눈만 있으면 내가 사업을 하는 거구나. 이 개념에 완전 꽂힌 거죠."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식을 매개로 기업을 소유하면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뿌리깊은 열등감과 이해하기 힘든 세상의 불공평함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모든 일을 접고 과외와 주식공부에만 몰두했다.
"국내에서 '코카콜라 같은 회사가 뭘까 '이런 초보적인 수준부터 시작했어요. 저는 주식을 기업에 대한 소유권으로 보는 것이고, 단타로 사고 팔고 트레이딩하고 이런 건 관심이 없어요. 그 회사 주식을 사면 제 회사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동서식품 투자할 때 매일 그 회사 커피믹스만 먹어요. 회사에 출근했는데 혹시라도 다른 회사 커피가 있으면 난리가 나요. 주식을 기업으로 보고, 제가 주인이라고 생각해야 속이 풀리는 거에요. 저는 주로 한국 기업에 투자합니다."
최준철 대표는 주식 운용 경력이 27년 정도 된다. 최 대표는 서울대 투자동아리 스믹(SMIC) 출신이다.
"지금은 스믹이 유명해졌지만 동아리 초창기 때는 정말 서럽게 활동했습니다. 주식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았고 동아리 외부에선 저희 동아리를 '카지노 동아리'라고 생각했어요. 도박하는 애들이다."
96학번인 최 대표는 대학 시절 외환위기를 겪었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주식 투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더욱 악화했고, 금융투자업계로 진출한 동기도 드물었다. 주식 투자 기피의 시대였다.
"강성부(KCGI 대표), 황성환(타임폴리오자산운용 대표) 이런 형들이 투자동아리 스믹을 만들었고, 그걸 저 같은 후배들이 이어받아서 대외적으로 동아리를 좀 알리고 책도 내고 여러가지 활동을 했어요. 그 때 저희 생각은 '주식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 이런 소박한 마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경제 상황에서 이걸 한 사람들이니 다들 자본시장에 대한 의지나 이런 게 좀 남달랐던 거죠."
학생이지만 투자동아리 활동에 진지하게 임했다. 주식시장에 대한 인식 개선과 가치투자의 개념을 알리기 위해 책도 내고, 교내신문도 내고, 인터넷 사이트도 만들고, 방송 출연도 했다.
"어떤 활동을 오래하려면 마음속에 불덩어리 같은 게 있어야 합니다. 주식을 도박판으로 보는 사회적인 시선을 바꾸고 싶었어요. 저한테는 어린시절의 꿈을 이뤄준 게 주식이잖아요. 주식은 곧 기업이었는데, 사람들은 주식을 도박판의 카드처럼 봤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볼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논리를 담아서 글도 쓰고, 내가 스스로 입증해야 해요. 이게 진짜로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하거든요."
최 대표는 한국형 가치투자의 2세대에 해당된다.
"가치투자 1세대로 이채원(라이프자산운용 의장), 허남권(신영자산운용 대표), 강방천(전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선배님이 계세요. 1세대 분들은 약간 자생종교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토종이죠. 월급 많이 준다고 해서 증권사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연구하다가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가치투자였다. 이런 게 1세대 대부분의 스토리이고요.
저희 2세대는 미국서 했던 이론을 책으로 배워서 이 책에 있는대로 한번 해보자라고 해서 이제 한번 실전에 적용을 해본 세대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특징이 되게 교과서적으로 합니다. 그레이엄에서 버핏으로 이어지는 그분들이 얘기한 개념으로 하는 것이죠. 철저하게 분석하고 낮은 리스크를 유지하고 적당한 수익성을 장기적으로 추구해서 복리 수익을 만드는 것, 이게 딱 저희가 추구하는 것이죠. 이 교과서적인 투자에 대해선 추호의 의심이 없습니다. 다만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게 있거든요. 이런 로컬적인 부분을 투자의사 결정에도 반영을 해야하죠. 결국 저희가 한국형 가치투자라고 하는 것 자체가 다른 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인 어떤 선택의 문제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특징과 전반적인 투자 환경의 차이를 조금 더 반영해서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처음 인터넷 커뮤니티가 생기고 그럴 때 가치투자 사이트가 하나 있었어요. 누가 글을 올렸더라구요. 제가 가지고 있는 종목을 분석해놨어요. 분석도 잘하고 저랑 뜻도 맞을 거라고 생각했죠. 대학생 중에 투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저씨일 거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했는데 학교도 같고, 나이도 같더라구요. '야, 우리 만나자!' 그랬죠."
김민국 대표가 먼저 투자동아리 스믹에 소속돼 있었고, 김 대표의 권유로 동아리 활동을 같이 하게 됐다. 성격도 잘 맞았다. 그와 함께 대학시절 VIP펀드라는 것을 만들었다. 친구들끼리 몇천만원으로 시작한 투자다. 인터넷 사이트에 투자 내역과 기업 분석 보고서를 꾸준히 2년 동안 올렸다. 일종의 투자 블로그다. 이렇게 만든 펀드가 수익률 117%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6% 오르는 데 그쳤다. '대학생 투자고수'로 유명해지면서 팬도 생겨났다. 이후 김민국 대표와 함께 2003년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투자자문사를 창업했고, 2018년 자산운용사로 전환했다.
"김 대표랑 저는 투자 철학은 같은데 성격은 정반대에요. 부부도 그렇지만 오히려 다르면 잘 삽니다. 비슷하면 부딪혀요. 둘이 신나게 교집합을 갖고 지금까지 해온 거죠. 저는 좀 쎈 회사, 강한 회사를 좋아하고 김 대표는 저평가 된 회사를 좋아합니다. 김 대표가 잘 하는 영역이 있고 제가 잘하는 영역이 있어서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가 나죠. 그래서 동업관계에서도 서로 보완을 하면서 지금까지 큰 사고없이 잘 오게 된 것 같아요."
대학시절 가치투자에 대한 교내신문을 만들 당시 제작비 걱정으로 고심할 때였다.
"진짜 제작비가 없어서 다음 달에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었어요. 주식은 절대 팔기 싫고 학교 앞에 작은 오피스텔에서 누워 있는데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김 대표가 갑자기 나가더니 열심히 아쉬운 소리를 해서 여기 저기 증권사에서 광고를 따가지고 온 거에요. 이런 식으로 김 대표는 같이 사업하다 보면 위기의 순간에 벌떡 일어나서 어떻게든 해결을 해 와요."
김 대표가 임기응변에 능하다면 최 대표는 지구력이 강한 편이다.
"저는 꾸준히 하는 걸 잘해요. 김 대표가 저를 평가할때 '미친듯한 꾸준함'이라고 해요. 운동도 일주일에 두세번씩 10년 동안 같은 곳에서 계속합니다. 영양제도 하나 먹으면 그냥 그것만 계속 먹고, 신문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1면부터 끝까지 다 보고 그럽니다. 저는 꾸준한 건 자신있어요. 예를들어 8시20분부터 10시30분까지는 종목을 본다고 정해놓고 매일 해요. 그리고 밤 12시가 되면 무조건 잡니다."
김 대표와 최 대표는 여전히 사무실을 같이 쓴다. 책상을 기역자로 놓고, 서로 '초심을 잃지말라'고 쓴소리도 한다. 집도 같은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산다. 둘의 공통점은 투자 철학, 술을 먹지 않는 것, 그리고 책임감이다. 28살 젊은 나이에 투자자문사를 차려 자본시장의 거친 풍파 속에서 서로를 의지해왔다.
"처음에 고객들이 억단위 큰 돈을 들고 와서 맡기는데, 사실 꿈만 같았어요. 진짜 다른 큰 운용사에 안 가시고 저희한테 오시기까지 얼마나 주변의 반대가 있었겠습니까. 심지어는 부부가 같이 오셨는데 옆방에서 '얘네들은 도망가는 애들 아니다'라면서 남편이 아내분을 설득하는 소리가 다 들리기도 하고. 그렇게 맡은 돈이었기 때문에 정말 책임감이 크더라고요. 한 가족의 자산의 큰 부분을 맡았다는 게 정말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그는 남들이 다 관심을 갖는 이른바 '핫한 주식'에는 관심이 없다.
"각자의 기준이 다 다르잖아요. 좋은 종목, 좋은 기업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달라요. 그런 부분에서 제 취향은 약간 마이너리티에 가깝죠."
그는 본능적으로 '숨은 보석'을 찾는다. 면접을 보는 과정과 비슷하다. 1차 관문은 이력서 격인 재무제표 분석이다. 기업이 흘러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표다. 그 다음은 검색이다. 이 잡듯이 모든 공개된 정보를 찾아본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궁금한 지점이 생긴다. '이 때 왜 이런 의사결정을 했을까' '이 때는 왜 갑자기 숫자에 큰 변동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런 부분들은 기업탐방을 가거나, 경영자를 만나 질문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계속 추적합니다. 정말 집요할 정도로 계속 하다보면 투자할 만한 기업인지 어느 순간 보입니다. 한두 시간 기업을 분석해서 살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몇년씩 걸립니다."
이런 분석은 팀 단위로 이뤄진다. 팀 단위의 '모닝미팅'은 최 대표가 운영하는 VIP자산운용에서는 일주일에 딱 한번 있다. 회의시간은 20분이다.
"호흡이 다른거죠. 저희는 한명에게 한 두달 정도의 시간을 줍니다. 한 기업을 심층 분석할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줍니다. 기업을 사고 나서도 '마크맨'이 그 기업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보고합니다. 팀플레이로 움직이니까 이게 가능합니다."
최 대표는 감정의 기복이 매우 적은 사람이다. 감정적인 성격은 투자에는 독이고, 평정심은 약이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시절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큰 슬픔을 겪은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최 대표의 하루 일과는 대략 이렇다. 12시에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 7시에 기상한다. 하루 7시간 수면원칙을 무조건 지킨다. 회사에 도착하면 8시20분. 2시간 정도를 앉아서 자료를 본다. 이미 투자한 회사, 관심있는 회사들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시간이다. 미팅과 회의, 기업탐방 일정 등을 소화하고 오후 4시부터 2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다시 야근모드다. 10시 정도에 퇴근을 하니, 하루 평균 14시간 정도를 일하는 셈이다.
"제가 심리검사를 하면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감정의 기복이 적다는 겁니다. 제가 감정 변화가 컸으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투자할 때는 정말 냉정해야 합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투자, 감정적인 투자는 절대 관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이 기업이 잘하느냐, 못하느냐 그것 가지고 판단을 하는거죠."
물론 강철 멘탈인 그도 흔들릴 때가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다. 주식투자를 하면서 처음으로 마이너스, 파란색을 봤다.
"남의 돈으로 마이너스를 내니까 너무 충격이었어요. 저희가 개인투자를 할 때는 사실 수익률이 몇 프로가 아니라 몇 배 수 였어요. 그러니까 프로 입문을 한 거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수익률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죠."
믿어주던 고객들이 욕하면서 돌아섰다. 조직도 완전히 무너졌다. 최 대표는 처음으로 실패를 맛봤다. 조직관리 교육도 받고 심리상담도 받았다. 외환위기도 잘 넘겼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고객 돈을 지킨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다시 멘탈을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당시 경험은 가치투자의 토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처음 맞는 위기였던 거죠. 승승장구만 했었고, 어린 나이에 입문해서 조명도 받고 그러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나락으로.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나중에 코로나19 그럴 땐 괜찮았습니다. 처음 겪은 위기엔 움츠러들어서 아무것도 못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런 때 펀드를 설정하자 이런 식으로 바뀌었죠."
냉정한 그가 유일하게 오지랖을 부리는 부분이 있다. 투자시장을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이 직장에서 열심히 번 돈을 주식에 투자해서 한번에 날리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단다.
"사실 저는 주식으로 돈 벌어서 혼자 잘먹고 잘 살면 되요. 그런데 그게 안 됩니다. 워런 버핏도 주주총회 나와서 질의응답을 6시간을 받아주고 그런 것이 저랑 비슷한 마음일 거라고 생각해요. 3조 이상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편하게 살려면 이대로 그냥 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요. 고액자산가들이나 연기금과도 이미 신뢰가 두텁게 쌓여서 돈 맡겨두고 알아서 벌어달라고 하시는 고객분들만 모시고 가도 사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왜 굳이 공모펀드를 하느냐. 바로 퇴직연금 때문입니다."
그는 국내 시장에서도 미국의 401K와 같은 퇴직연금제도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최근 미국 은퇴자 사이에선 '401K 밀리어네어(Millionaire·백만장자)'란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401K는 우리나라의 개인형퇴직연금(IRP)과 비슷한 퇴직연금계좌로 미국 퇴직연금제도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401K 밀리어네어'는 401K에 꾸준히 적립하고 투자해 100만 달러(약 13억원) 이상의 퇴직연금을 가지고 풍족하게 사는 은퇴 근로자를 의미한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국민연금 이런 제도가 없어서 본인이 번 돈을 넣고 운용을 잘해서 퇴직 후에 연금으로 받아쓰는 401K, 그러니까 퇴직연금이 이 사람들에겐 최선입니다. 이걸로 진짜 미국 사람들의 노후가 상당 부분 많이 해결이 됩니다. 그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진짜 노후 대비를 하는 데 가장 살려야 되는 부분이라고 보는데, 사실 가장 방치돼 있습니다."
퇴직연금은 VIP자산운용처럼 장기 가치투자 펀드가 다루기에 적절한 자금이다. 최 대표가 퇴직연금 시장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중에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퇴직연금에 일찍 뛰어들어서 뭔가 국민들을 위한 역할을 하는 게 저희에게 의미있고 뿌듯함이 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퇴직연금은 투자일임이나 사모펀드로는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공모펀드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사모펀드 최저 가입 금액 5억원 등 제한 때문에 저희에게 오셨다가 발걸음을 돌린 분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좀 있었습니다. 공모펀드는 그런 금액적인 제한도 적고요."
커지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약 20년 정도는 공모펀드에 힘을 써서 가야 한다. 수익률 제로에서 다시 시작이다.
"모든 업종에서 다 비슷할 것 같은데, 인공지능(AI)이 다 해줄 것처럼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가고 있잖아요. 상장지수펀드(ETF)나 구조화된 펀드 그런 것들이 선(善)인 것처럼 이렇게 여겨지고, 사람 손을 거치면 왜곡이 되고 믿을 수 없어 약간 이런 분위기요. '여의도 있는 것들'이라는 비판적인 시선들, 과연 그럴까요. 모두가 ETF를 하는 게 맞는 걸까요, ETF 메뉴판이 너무 길어서 고를 수도 없을 만큼 많아요. 지금 이 추세로 가면 제가 볼 때는 상장 주식보다 ETF가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사실 ETF가 과학적인 것 같지만 테마형이 너무 많거든요. 지수 추종이라고 하는데 버핏이 S&P500 장기투자를 하라고 했지, 그걸 레버리지나 인버스로 해서 트레이딩하라고 한 게 아니잖아요."
시장에서 AI를 활용한 투자나 ETF에 밀린 펀드매니저에 대한 신뢰와 자존심 회복도 그에겐 과제다. 기존 자산운용사들은 이미 ETF나 대체투자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과 달리, VIP자산운용을 포함한 펀드 빅3 자산운용사(타임폴리오자산운용, DS자산운용)들이 외려 공모펀드 시장 활성화에 나서는 이유다.
"지금 자본시장은 '시지프스의 돌'처럼 고통이 반복되고 있어요. 열심히 번 돈을 주식해서 다 날리고, 욕하면서 침뱉고 나갔다가 또 다시 돌아오는 그런 걸 진짜 바꾸고 싶습니다. 펀드매니저로서의 자존심은 제가 수익률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고, 제가 책도 쓰고 여러 매체 활동도 열심히 하는 것은 이런 일을 막고 싶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입니다. 제가 은퇴할 때쯤엔 '부동산은 필승(必勝), 주식은 필패(必敗)'라는 공식이 바뀌었으면 합니다. 저는 숫자로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죠. 창업 취지인 '가치투자를 증명한다' 이것을 아직도 계속 하고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할 겁니다. 처음에 저희가 아무것도 없을 때 찾아주신 고객들에게 자산을 불려드리겠다는 생각으로 했다면, 이제는 좀 더 확장해서 국민들의 퇴직연금을 불려서 노후의 불안을 줄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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