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첫 관료 출신 대통령에 거는 기대

정재형 금융부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고시(高試)에 합격한 엘리트 관료 출신인 첫 대통령이다. 고위 관료 출신으로 최규하 대통령이 있지만 신군부에 의해 추대됐고 재임기간도 8개월로 짧았던 점을 고려하면 윤 당선인을 처음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여러 명의 엘리트 관료 출신들이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행정의 달인'으로 불렸던 고건 전 총리,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있었고, 법조 출신으로는 '대쪽' '쓴소리'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던 이회창 전 총리, 황교안 전 총리 등이 있었다. 이 전 총리가 두 번의 대선에서 적은 표차로 패배했을 뿐 나머지는 대선 도전 과정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들이 대선 도전에 실패했던 주된 이유는 평생 대우 받으며 고고하게 살아왔다가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정치판에서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통령으로서 자질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20년 정도의 기자 생활 중 4분의 3을 경제부, 금융부 소속으로 있으면서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경제부처를 담당했다. 내가 만나 본 관료들은 대부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어떤 정책을 해야 하는지, 어떤 길로 가는 게 바람직한지를 역설했다. 기자와 만나는 자리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직자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대단했다.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면 참 잘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법조 출입을 해보지 않아 검사 등 사법 관료는 잘 모르겠다. 정치와 권력을 좌우할 수도 있는 사법 관료는 경제 관료와 다를 수도 있겠다. 항상 '사법 정의'를 부르짖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 걸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고 불리는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윤 당선인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살아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했다. 그래서 좌천도 당했고 정권이 바뀌며 부활했다. 이 때문에 인기를 얻으며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정치인에 비해 관료들의 장점은 포퓰리즘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 유리하냐를 따지기보다 국가의 장기 비전과 미래를 우선시해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잘 듣는 성향도 있다. 새로운 이슈나 사안에서 관료들이 일하는 방식은 해당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전문가들 각각의 의견을 들어보고 서로 토론도 시키고 하면서 가장 바람직한 의사결정이 무엇인지를 판단해 정책에 반영한다. 잘 모르는 분야일수록 그렇다.


물론 단점도 있다.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복지부동'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정치인들은 부작용이 있더라도 여러 요청이 있다면 일을 추진하는 쪽으로 생각하지만, 관료들은 일단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기술에 대한 시야가 좁기도 하다. 가상자산에 대해 처음에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중"(2018년 1월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라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관련 회의에 참석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육성 쪽으로 얘기했다가 '그러면 투기 도박판을 그냥 두고 보자는 거냐'는 식의 비판을 받았다"며 "우리 부서를 빼고 나머지 대부분 부처의 시각이 그랬다"고 토로했다.


가상화폐 거래 금지는 없는 일로 됐지만 이후에는 또 가상자산 시장을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해서 가상자산 거래소가 난립하고, 투자자 보호가 전혀 되지 않은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아무쪼록 윤 당선인이 관료의 장점은 최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했으면 좋겠다. 또 엘리트 관료 출신 대통령으로 꼭 성공해서 앞으로도 그런 대통령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정재형 금융부장 jj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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