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삼성전자 가 40대 최고경영자(CEO)를 언제든 배출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던 기존 대기업 문화에서 탈피해 나이에 상관없이 인재를 중용하고, 젊은 경영진을 조기에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해 나간다는 취지에서다. 전문성과 업무 성과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절대평가 기준을 도입하고 사내 협업과 소통, 수평적 조직 문화를 유도하기 위한 체계도 갖췄다. 이를 통해 '임직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조직'을 강조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삼성’ 구상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삼성전자 는 29일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중장기 지속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승격제도 ▲양성제도 ▲평가제도 중심의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안을 발표했다.
인사제도 혁신안 가운데 두드러진 변화는 '삼성형 패스트트랙'의 도입이다. 우선 부사장과 전무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합해 임원 직급단계를 축소했다. 또 현재 4단계로 나뉜 각 직급단계(CL)마다 승격을 위해 최대 10년을 채워야 하는 '표준체류기간'도 폐지한다. 대신 팀장의 인사 권한을 강화한 ‘승격세션’을 새로 도입했다. 이는 젊고 유능한 경영자를 조기 배출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다. 삼성은 이를 통해 30대 임원뿐 아니라 40대 CEO도 과감하게 발탁 승진하는 사례가 일상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앞서 진대제, 황창규 전 사장 등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 내에서 40대 기수가 특정 사업부를 이끄는 사장에 오른 적은 있었으나 CEO로 파격 발탁된 전례가 없었다. 삼성전자에서는 2018년 노태문 사장이 만 50세에 IT·모바일(IM) 부문 무선사업부장으로 임명된 것이 역대 최연소 기록이었으나 CEO는 아니었다.
내년부터는 직원 고과평가에서 절대평가도 확대된다. 고성과자 10%를 제외하고 나머지 90%에 대해서도 성과에 따라 누구나 상위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또 부서장 1명에 의해 이뤄지는 기존 평가 프로세스를 보완하고 임직원 간 협업을 장려하기 위해 '피어(Peer) 리뷰'도 시범 도입한다. 이 제도는 동료 간 평가가 핵심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등급은 부여하지 않고 협업 기여도를 서술형으로 작성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내년 일부 조직을 대상으로 시범 도입한 뒤 임직원 의견을 수렴·보완해 2023년부터 공식 운영을 검토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또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고려해 사내 인트라넷에 직원들의 직급이나 사번을 노출하지 않기로 했다. 연말에 이뤄지는 승급 발표도 하지 않는다. 상호 존중과 배려의 문화 확산을 위해 사내에서는 '상호 존댓말 사용'을 원칙으로 할 계획이다.
다양한 경력개발 기회도 제공한다. 사내 프리에이전트(FA) 제도를 도입해 같은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게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국내와 해외법인의 젊은 우수인력을 선발해 일정기간 상호 교환근무를 실시하는 'STEP(Samsung Talent Exchange Program) 제도'도 운용한다. 또 육아휴직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육아휴직 리보딩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복직 시 연착륙을 지원할 예정이다. 우수인력이 정년 이후에도 지속 근무할 수 있는 '시니어 트랙' 제도도 도입한다.
이 밖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주요 거점에 공유 오피스를 설치하고, 사내에 카페·도서관형 자율근무존을 꾸려 유연하고 창의적인 근무환경을 지원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제도 혁신을 통해 임직원들이 업무에 더욱 자율적으로 몰입할 수 있고,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미래지향적 조직문화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에도 100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임직원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하고 인사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