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금융기업들 "굿바이, 뉴욕"

코로나19가 바꾼 도시지형도
재택근무 확산에 세금·물가 비싼 대도시 탈출

폭설 내린 미국 뉴욕의 모습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폭설 내린 미국 뉴욕의 모습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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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권재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뉴욕이 비즈니스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위협받고 있다."


세계적 투자은행 중 하나인 도이치방크가 향후 5년 내 4600명에 달하는 뉴욕 맨해튼 근무자 중 절반을 중소 거점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블룸버그 통신은 이처럼 평가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도입된 재택근무가 기업 및 인구의 유출로 이어지면서 미국 주요 도시의 위상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이는 임대료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부동산시장의 지형도까지 바꾸고 있다.

도이치방크뿐만이 아니다. 세계 금융의 상징과 같던 월가에서는 앞서 골드만삭스가 핵심 조직 중 하나인 자산운용 사업부를 플로리다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시타델, 세계 4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도 뉴욕 맨해튼을 떠나 플로리다에 정착했다. 반대편인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밸리에서는 터줏대감 휴렛팩커드(HP)가 자사의 클라우드 서비스 부문 사업부인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본사를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옮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40년 넘게 실리콘밸리에 터전을 잡아온 오라클도 텍사스의 주도인 오스틴으로 본사를 이전한다.


이 밖에도 데이터 분석 기업 팰런티어테크놀로지, 유명 벤처사업가 조 론스데일이 만든 '8VC',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드롭박스 등이 실리콘밸리를 떠나 오스틴에 새 둥지를 트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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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코로나19 사태로 비용 절감이 각 기업의 핵심 과제가 되면서 과감히 도시를 벗어나는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바로 세금이다.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도 세금이 높은 주로 손꼽힌다. 미국에서 가장 세금이 높은 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13.3%, 뉴욕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8.82%다. 여기에 뉴욕시 거주자는 소득에 대해 최고세율 3.8%를 별도로 부과받는데 이를 합하면 총 소득의 약 13%를 지방세로 납부해야 하는 셈이다. 반면 텍사스주와 플로리다주는 개인소득세율이 '0%'다.

동시에 재택근무의 확산도 인구 유출을 가속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위치정보분석업체 우나캐스트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12월6일까지 뉴욕을 떠난 사람은 357만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뉴욕으로 순유입된 인구는 350만명으로, 결과적으로 뉴욕은 총 7만여명의 순유출을 겪었다. 근무 방식의 변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물가가 비싼 도시를 떠나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도시에 정착하는 것이다. 래리 앨리슨 오라클 회장과 일론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역시 캘리포니아를 떠나 각각 하와이와 텍사스에 정착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나비효과는 부동산시장까지 불어닥쳤다. 미 주요 도시의 임대료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주택감정회사인 밀러 새뮤얼과 부동산 중개업체 더글러스 엘리먼이 공동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맨해튼의 임대료 평균치는 전년 동월 대비 22% 하락한 2743달러(약 298만원)를 기록했다. 이는 2010년 10월 이후 최저치다. 맨해튼 아파트의 공실도 치솟았다. 11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1만5130건을 기록했다. 공실률은 6.14%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맨해튼을 제외한 뉴욕 내 다른 지역의 임대료도 하락했다. 브루클린은 같은 기간 8.3% 하락한 2619달러, 퀸즈는 21% 떨어진 2275달러로 나타났다.


실리콘밸리 효과로 높은 임대료를 자랑하던 샌프란시스코도 마찬가지다. 임대료조사업체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지난달 샌프란시스코의 원룸 임대료는 전년 동월 대비 35% 하락한 2100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이 급락하고 공실이 확대되면서 집주인들은 금융위기 이후 겪어보지 못한 수준으로 임대료를 낮추는가 하면 몇 달 치 월세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조나단 밀러 밀러 새뮤얼 주식회사 사장은 "임대료가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2021년에도 상당 부분 이러한 현상이 진행될 것"이라며 "이는 전적으로 얼마나 빨리 사무실로 복귀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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