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멸치를 한우로 바꿀 생각 없다"…'뒷북'된 청탁금지법 한시완화

"타이밍·정책대상·효과 모두 나쁜 탁상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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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이번 추석에 직원들에게 2만~3만원대 멸치 선물세트를 전할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간신히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 방침이 바뀐다고 멸치를 한우로 바꿀 수 있겠나."(금융권 A사)

"추석 선물을 주기 위해서는 연휴 6주 전부터는 준비해야 하는데 연휴 20일 전에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택배 대란' 전에 선물을 다 보내야 하는데 정부 방침이 너무 늦게 나왔다."(금융권 B사)


이번 추석에 한해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리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이 10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역대 최장 장마와 잇따른 태풍 피해로 신음하는 농가, 소비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통가는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정작 돈을 써야 할 입장인 기업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현장에선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기업들은 ▲경쟁입찰로 납품업자와 계약하거나 ▲백화점에 문의해 받은 카탈로그를 예산 부서에 보고하는 식으로 선물 지급 계획을 짠다. 연휴 2주 전 택배 대란을 피하려면 업무에 한 달 이상 걸린다.


더구나 관련 예산은 직전 연도 11~12월에 미리 책정한다. 전년 보고 사항보다 큰 금액의 선물을 주려면 바뀐 비용과 계약 상황 등에 대해 다시 예산 및 내부통제 부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내년 설 연휴면 모를까, 올 추석 명절에 9만9000원짜리 선물을 19만9000원짜리로 바꿀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회사처럼 건강기능식품 등 농·축·수산물 외 품목을 선물하는 업체가 품목을 바꿀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경영 애로가 많은데 상한액을 올린다고 이에 호응할 기업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정책의 대상이 '청탁금지법 관련자'이기 때문에 긴급재난지원금, 으뜸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 환급사업과 같은 내수 활성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꼼꼼한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나온 탁상행정이라는 얘기다.


모처럼 국민권익위원회가 시장과 기업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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