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철새와 엽총/주민현

오늘은 나의 이란인 친구와

나란히 앉아 할랄푸드를 먹는다


그녀는 히잡을 두르고 있고

나는 반바지 위에 긴 치마를 입고

우리는 함께 앉아서 텔레비전을 본다

암사자는 물어 죽인 영양을 먹다가

배 속의 죽은 새끼를 보자

새끼를 옮겨 풀과 흙을 덮어 주고 있다


마치 생각이 있다는 듯

생각이 있다는 건


총 밖으로 새가 날아오른다는 건

오늘 친구와 나는 나란히 앉아 피를 흘리고

우리는 가슴이 있어서 여자라 불린다


마치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그녀는 검은 히잡을 두르고 있고


철새를 사냥하듯이 총을 들고 숲을 뒤졌다고 했다

그녀의 친구가 옆집 남자와 웃으며 대화했다는 이유로


흑백사진 속에선 무엇이든

흰 눈밭의 검은 얼룩처럼 보이고


흰 얼룩도 긴 적막도

발사된 뒤엔 모두 사라지는 소리지만


그녀의 히잡은 검고

내 치마는 희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이 세계에 허락된 음식을 먹는다


우리는 나뭇가지로 딱총을 만들어

나뭇잎들을 맞히기 시작하는데


떨어지는 나뭇잎은 날아오르는 새들 같고

우리는 생각 없이 웃는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내 발바닥엔 글씨가 적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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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혹하구나, '사냥'이라니! 친구를 '사냥'할 수밖에 없었다니! 그것도 단지 "친구가 옆집 남자와 웃으며 대화했다는 이유로", 그러니까 다만 여자라는 이유로! 그런데 이와 같은 '사냥'은 정말이지 저 멀고 먼 이국에서만 벌어지고 있을까? 아닐 것이다. 아니, 단연코 아니다. 시인이 직접 붙인 주석을 보면 "이란에서는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노래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정도는 다르겠지만 한국도 매한가지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누군들 감히 그녀들의 발바닥에 적힌 글씨를 두려움 없이 읽을 수 있겠는가.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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