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도와줄까요?" 빈곤 청소년, '랜덤채팅' 성착취 노출 위험

'n번방', '박사방' 가해자들, 채팅앱 이용해 미성년 피해자에 접근
성매매 청소년 대다수 가정 불화·빈곤 문제 시달려
전문가 "IT 시대 성범죄에 맞는 기술적 방어 체계 갖추는 게 중요"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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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임주형 인턴기자] 미성년자 등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 돈을 받고 유포한 'n번방', '박사방' 등 피의자들은 주로 랜덤채팅어플리케이션(어플)을 이용해 경제적 문제를 겪는 미성년 피해자를 꾀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액 알바를 시켜주겠다며 연락처, 주소 등 신상정보를 알아낸 뒤 성착취물을 찍도록 협박한 것이다.


이처럼 일부 채팅 어플 이용자들은 랜덤채팅의 익명성을 이용, 청소년에 접근해 성착취를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큰 가출 청소년, 빈곤·방치 가정 자녀 등은 더욱 성착취에 걸려들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다.

중학생 시절 '박사방'에 피해를 입었다는 A 씨는 지난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생활비가 부족해 고민하던 중 채팅 어플을 통해 '스폰 알바'를 권유 받았다"며 "(권유한 측에서) 돈과 휴대폰을 보내줄 테니 계좌번호,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요구했다"고 성착취 가해자와 접촉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A 씨는 자신을 포함한 미성년 피해자들이 이같은 채팅 어플 스폰 알바를 통해 가해자들과 접촉했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 채팅 어플에 스폰 알바를 구한다는 메시지가 엄청 많이 올라온다"며 "조건 만남 어플, 트위터 계정 등 대부분 학생이 이용하고 있다. (가해자들은) 아예 사회생활을 모르는 미성년자들에게 (성착취 요구를) 더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난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성매매에 이용된 아동·청소년 관련 종사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인권실태조사 결과, 성매매에 유입된 청소년들은 대개 빈곤·가정 불화 등의 문제를 겪었다. 성매매를 하게 된 이유로 잘 곳이 없어서(35.0%), 돈을 준다고 해서(32.0%)가 가장 많았다.

청소년 성매매 유형은 1:1 조건만남(88.3%)이 가장 많았고, 성매매 유입 경로는 스마트폰 랜덤채팅앱(59.2%)이 가장 많았다.


성구매자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당했다고 답변한 청소년도 80%에 달했다. 사례별로 보면 약속한 금액을 주지 않음(53.4%), 성 매개 질환(성병) 감염(47.6%) 등이 가장 많았으나, 욕설·폭행·협박(36.9%)을 당하거나 변태 행위(28.2%), 동영상 촬영(15.5%) 등을 강요 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구위기청소년교육센터(대구교육센터)에서 지난 2018년 성착취 피해 청소년 2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성매매를 하게 된 이유는 '가출 후 생계비 마련(44.8%)'이 가장 컸다.


성착취물 공유 'n번방' 적극수사 촉구 / 사진=연합뉴스

성착취물 공유 'n번방' 적극수사 촉구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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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남은주 대구교육센터장은 지난해 9월4일 열린 여성가족부(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정책토론회에서 "상담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버스비조차 없는 빈곤 상태였고, 성구매자가 판치는 온라인에서 성매매에 유입됐다"며 "이들 중 다수는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어 집에 돌려보내도 다시 가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전문가는 IT 시대의 성착취 범죄에 최적화된 기술과 제도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진경 10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26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스마트폰 보급 후 랜덤채팅앱은 아동 성착취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매김해왔다"며 "빈곤·방치 가정 아동이 성매매에 주로 유입돼 왔으나, 최근에는 일반 가정 자녀들도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어 이제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고 봐야 한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성착취범들이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기술적 방어 체계를 갖추는 것"이라며 "채팅앱에 실명 인증 수단을 도입해 범죄자가 익명성 뒤로 숨지 못하게 해야 하며, 당국도 전담 부서를 구축하고, 디지털 성범죄 시대에 맞는 양형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5월2일 '청소년 종합보호대책'을 발표, 랜덤채팅앱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가부는 앱 유통사들과 협력해 랜덤채팅앱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청소년에게 안전하지 않은 앱은 유통사에서 자율규제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여성긴급전화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에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임주형 인턴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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