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야간열차에서 만난 사람/곽효환

여수행 전라선 마지막 열차

자정을 앞둔 밤 열차는 우울하다

듬성듬성 앉은 사람들을 지나 자리를 찾고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고 긴 숨을 내뿜고 나면

일정한 간격으로 덜그럭거리며 출렁이는

리듬을 따라 차창 밖으로 불빛이 흘러간다

강을 건너 한참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야경들,

틈새가 없다

문득 창밖으로

어디서 본 듯한 그러나 낯선 얼굴이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인가 곧 물을 것만 같은데

정작 말이 없다

흘러간 불빛만큼이나 아득한 지난날들에서

누군가를 찾는데

없다

나도 그도 아무도 없다

문득 대전역에서 뜀박질하며 뜨거운 우동 국물이 먹고 싶다

옛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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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에서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는 "어디서 본 듯한 그러나 낯선 얼굴"의 '그'는 두말할 것 없이 바로 '나'다. 그러니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이 시에서 '나'는 셋인 셈이다. 비록 좀 흐릿하기는 해도 어두운 기차 창문에 비친 지금 당장의 '나'인 '그', 그리고 '그'를 낯설어하는 '나', 마지막으로 "흘러간 불빛만큼이나 아득한 지난날들" 어딘가에 있을 "나도 그도" 아닌 '누군가'인 '나' 이렇게 말이다. 이 시는 물론 "대전역에서 뜀박질하며 뜨거운 우동 국물"을 먹던 "옛날"의 '누군가'에 기울어 있다. 왜 아니겠는가.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의 내가 자신을 낯설어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늙고 지쳤고 세파에 찌들었을 그런 자신을 말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대부분이 느끼는 일이다. 요컨대 이상하게도 현재의 '나'의 타자는 자기 자신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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