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불붙은 '피의사실공표' 논쟁…"사회적 합의 절실"

'무죄추정 원칙' 취지 1953년 형법 제정 시 포함
국민 알 권리 커지며 사실상 사문화
수사권조정 갈등 연장선상?
"새로운 제도·기준 필요"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KT에 딸을 부정 채용시킨 혐의로 자신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들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KT에 딸을 부정 채용시킨 혐의로 자신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들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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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피의사실공표'를 둘러싼 검찰과 경찰 조직의 갈등이 쌍방 수사로 이어지며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이에 수사기관 간 소모적 논쟁이 아닌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1953년 우리나라 형법이 최초 제정될 때부터 규정돼 있던 범죄행위다.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 공표하면 처벌하도록 해 형사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취지다. 이를 어기면 징역 3년 이하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해지는 것은 66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하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접수된 피의사실공표 사건 347건 가운데 기소된 사례는 전무했다. 피의사실공표죄가 국민 '법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를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살인범 체포나 아동학대 등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는 범죄조차 기소 이전에는 언론을 통해 공개돼선 안 된다. 다단계 사기나 불법도박ㆍ마약 등 유사ㆍ추가피해를 막아야 하는 범죄도 일반에 즉각 알릴 수 없다. 이에 검찰과 경찰은 공익적 목적에서 각자의 공보기준을 마련해 운영해왔다.


그간 별다른 얘기가 없었던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최근 다시 불거진 것은 수사권조정과 맞물린 검ㆍ경 갈등이 배경에 있다는 해석이다. 울산지방검찰청과 울산경찰은 '고래고기 환부 사건'과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수사 등을 놓고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왔다. 울산에서 시작된 논란이 이제는 검경 갈등으로 촉발됐다. 최근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자신을 뇌물 혐의로 기소한 서울남부지검 검사 3명을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자, 경찰은 이 사건을 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배당했다. 검경이 서로 같은 혐의로 칼을 겨누게 된 셈이다.


이번 논란이 수사기관의 소모적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새로운 제도나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법무부와 협의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국민의 알 권리 등 피의사실공표를 둘러싼 다양한 가치가 있는 만큼 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수사기관끼리 서로 흠잡기 하는 행태는 보기 좋지 않다"며 "어떤 부분에 더 가치를 둘 것인지 협의를 통해 정책 어젠다를 설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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