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젠트리피케이션/서안나

블록이 □□ 몇 장 깨져 있다 점포 유리창에 임대라고 적혀 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목걸이를 깎아 팔던 사람 □ 천연 염색을 하던 사람 □ 초상화를 그리던 사람 □ 가죽 손지갑과 가방을 만들던 사람 □ 큐빅 핀과 반지를 팔던 사람 □이 몸싸움이 있었던 자리다


피가 도는 사람이 밥을 먹고 아이를 키우고 사람 □과 만나던 자리다 사람 □이 살던 자리다

깨진 블록 틈으로 벼락이 쳤다 반지와 풀과 나무와 지렁이와 큐빅과 연필과 개미와 벼락 맞은 사람이 있었다 □ 뒤돌아보는 □ 사람이 있다


나는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2층 카페에서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수입 맥주를 마시며 다리가 □ 듬성 □ 듬성한 오징어를 씹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한 것 같다


공공근로자들이 서둘러 도시의 □ 틈을 교체하고 있다 누군가 내 얼굴 □에 손을 집어넣어 □ 서둘러 빈칸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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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 흑당 버블티를 마시고 있는 그 카페테라스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 목걸이를 깎아 팔던" 가장이 미처 돌아가지 못한 월세방이다. 당신이 지금 셀카를 찍고 있는 천사의 날개가 그려진 그 벽돌담 앞은 "천연 염색을 하던" 여인이 차곡차곡 햇살을 모으던 곳이다. 당신이 거닐고 있는 그 거리가 아름다운 까닭은 어느 무명 화가와 먼 이국에서 온 난민과 복학하지 못한 대학생의 간절함이 아직 배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일군 꿈과 미래를 무단 점유 중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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