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 '양비'의 귀환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잊힐 권리를 허락해달라."


2017년 5월16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퇴장 선언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는 대선이 끝난 지 정확히 일주일 지난 시점이다. 이른바 공신(功臣)들이 문재인 정부 논공행상(論功行賞)과 관련해 눈에 불을 켜고 있던 때다.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줘야 새 사람이 오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한다." 그의 말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문재인의 남자'로 불린 양정철. 대통령 최측근이 청와대와 정부 요직을 마다한 채 떠나자 많은 것이 정리됐다. 자리를 탐하던 다른 이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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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전 비서관이 '양비(陽秘)'로 불렸던 것은 참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론 개혁에 관심이 많았던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언론 전문가'인 양비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양비는 노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봉하마을로 자주 내려가 술동무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양비는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을 맡았다. 특유의 꼼꼼한 일처리와 기획 능력으로 성과를 이어갔다. 2009년 5월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날 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상주로서 조문객을 맞았던 변호사 문재인은 그 사건 때문에 한사코 마다했던 정치 인생의 길로 들어섰다.

장례 실무 책임자 역할을 담당한 양비의 삶도 송두리째 바뀌었다. 양비가 여의도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누구보다 원하는 이유는 10년 전 그날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양비의 귀환은 시간문제였다. 2년 전 홀연히 떠났던 양비가 2019년 5월14일 돌아왔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를 책임지는 역할이다.


인생의 관점으로 보면 그는 가시밭길로 들어섰다. 수많은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있지 않은가. 양비는 알고 있었을까. 노 대통령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실현하는 일은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돼버렸다는 것을…. 변호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것도, 잊힐 권리를 외쳤던 양비가 결국 여의도로 돌아오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인지 모른다.






류정민 정치부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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