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무에 대하여/복효근

잘라 쓰고 남은 무 대가리

물 접시에 올려놨더니

움이 트고 장다리가 올라와 꽃이 핀다

한낱 무일 뿐인 것이

무밖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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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품새가 너른 시다. 특히 음의 연상('무'와 '무(無)')과 의미의 파생('무'-'아무것도 아니다'-'보잘것없다')으로 깁고 짠 시의 그물은 넓을 뿐만 아니라 깊기도 해 오랫동안 곱씹을 만하다. 그러니 내가 보탤 말은 겨우 이런 췌언에 지나지 않는다. 눈을 크게 떠 우주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무'나 사람이나 느티나무나 나비나 장구벌레나 실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 말의 결을 달리하자면 사람이나 느티나무나 나비나 장구벌레나 그리고 '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또 만약 사람이 존귀하다면 '무' 역시 느티나무가 나비가 장구벌레가 그런 것처럼 경이로운 존재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다만 중요한 사실은 저 '무'처럼 최선을 다해 저마다의 꽃을 피우는 일일 뿐.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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