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림의 행인일기 79] 충주에서

서울 ‘센트럴시티’에서 버스를 타고 충주(忠州)에 왔습니다. 하나는 영어, 하나는 한자말인데 두 고유명사의 의미는 같습니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이 합쳐진 글자, 그러니까 ‘충주’는 센트럴시티지요. 그래서일까요. 이 도시엔, 여기가 이땅의 ‘중심 고을’임을 내세우는 수식어나 슬로건으로 가득합니다.

천년 넘게 지켜온 자존감이며 자긍심입니다. 충주 옛 이름 중 하나인, ‘예성(蘂城)’은 숫제 자화상에 가깝습니다. ‘예’자 안에는 ‘가운데’를 의미하는 ‘심’자가 세 개나 포개져 있습니다. ‘예’는 ‘꽃술’을 뜻하지요. 한반도가 거대한 꽃잎이라면, ‘예성’은 한복판. 바로 꽃술에 해당한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말뿐만이 아닙니다. 꽃술의 상징물이라 해도 좋을, 실물도 있습니다. 지금 제가 바라보고 있는 ‘칠층석탑’이 그것입니다. 이 탑이 있어, 이 마을은 ‘탑평리(塔坪里)’가 되었지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14.5미터나 되는 탑이 조성된 연유를 짐작하게 하는 전설입니다.신라 ‘원성왕’ 때였다지요.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던 땅을 독차지한 나라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재물의 목록을 자꾸 헤아리는 벼락부자처럼, 새 영토의 크기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먼저, 나라의 중심이 어딘지 알아보기로 했지요. 덩치도 보폭도 비슷하고, ‘걷기 잘하는’ 사람 둘을 뽑아서 임무를 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북쪽 국경에서 남쪽을 향해 걸어라. 또 한 사람은 남녘 땅 끝에서 반대편으로 걸어라. 출발 일시를 엄수해야 함은 물론이다.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정해진 방향과 보조(步調)를 어기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걸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날 때까지, 그저 묵묵히 걷고 또 걸어라.”

신라의 ‘걷기 선수’ 두 사람이 만난 곳에, 이 탑이 세워졌습니다. 국보 6호,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 그러나, 학자들이 붙인 호칭보다 더 유명하고 친숙한 이름이 있습니다. ‘중앙탑.’ 어쩌면, 이것이 훨씬 오래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남과 북의 끝에서 하염없이 걸어온 두 신라인이 지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두 사람은 땀범벅의 얼굴을 마주보며, 무어라 소리쳤을 것입니다. 기쁨에 겨워, 아마도 이렇게 외쳤을 것만 같습니다. “여기가 우리나라 ‘중앙(中央)’이다!” 이들을 맞이하던 누군가는 시를 읊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이 신라의 물과 구름의 출발점, 산천의 시작점 그리고 백성들 마음의 정처(定處)다.’

‘중앙’이란 말의 속을 들여다봅니다.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집니다.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 또 다시 가야할 길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게 만드는 곳.’ 이렇게 말해도 좋겠지요.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나를 찾아 길을 나선 사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도 희미한 나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곳.’

아무튼 이 순진한 역사로부터, 중원(中原)의 위상은 더욱 확고해집니다. 근방을 흐르는 ‘반천(半川)’ 혹은 ‘안반내’라는 물도 그 무렵의 사연을 품고 있다지요. ‘한반래(韓半來)’로 유추해볼 수 있으니, 결국 국토 아래위를 ‘절반으로 가르는, 한복판의 물’을 가리키는 말이랍니다.(도수희, ‘한국의 지명’ 참조)

제 중심이 어딘지 모르는 땅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느 길이 중앙도 모른 채, 동서남북으로 달리겠습니까. 어느 산과 들과 냇물이, 제 무게중심 둘 곳을 찾아 흐르지 않겠습니까. 누군들 지금 자신이 처한 곳이, 중앙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구름이라도 풍향(風向)은 가리고 싶을 것입니다.

‘심(心)’이 ‘심장’을 본뜬 글자라서 그럴까요. 모든 모서리는 중심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중앙’은 거기에 인습과 제도의 권위까지 더해서, 모든 변방의 절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운데 자리에 앉고 싶은 물목(物目)들이 자꾸 늘어납니다. ‘중앙’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아집니다.

안산, 부산, 의정부, 창원, 대구, 대전....밀라노, 로마, 뮌헨, 프랑크푸르트, 베네치아....‘중앙동’도 흔하고 ‘중앙역’도 많습니다. 브라질을 무대로 한 영화 ‘중앙역’도 있지요. 중앙로, 중앙극장, 중앙시장, 중앙식당, 중앙이발관....교회도 있고 학교도 있습니다. 병원도 있고 장례식장도 있습니다.

기준과 표준, 원조와 대명사가 되기를 꿈꾸는 이름들입니다. 그러나 꿈을 이루긴 쉽지 않지요. 싸워야 하고, 이겨야 합니다. 이 중원의 무심한 ‘적요(寂寥)’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지요. 삼국의 각축과 몽고에 맞선 삼별초 항쟁, 임진왜란과 동학란 그 많은 피를 머금은 들판의 평화입니다.

설날이 코밑입니다. 천지사방 헤어졌던 사람들이, 이제 곧 그리운 쪽을 향해 길을 가겠지요.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치는 곳까지 걸어갈 것입니다. 저마다의 ‘중앙’을 찾겠지요. 저는 이제 ‘센트럴시티’행 버스를 타야 합니다. 서울 ‘중앙탑’이 보이는 곳으로 갑니다. ‘남산타워’로 가는 길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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