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진단-신·변종 바이러스①]"메르스 악몽, 잊으셨나요?"

2016년 신종바이러스 융합연구단 출범

[사진=아시아경제DB]

[사진=아시아경제DB]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21세기 '신·변종 바이러스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높다. 감염병은 이제 국경을 초월했다.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글로벌 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신·변종 감염병이다. 어느 한 나라의 특정 질병도 아니다. 한 번 창궐하면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시아경제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이에 대한 대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국내 감염병 대응 시스템은 물론 해외 현장 취재를 통해 신·변종 감염병에 대한 비상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10_LINE#>
걷잡을 수 없었다. 바짝 마른 갈대밭에서 불이 시작됐다. 삽시간에 번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2015년 5월20일 바레인에서 입국한 한국인 A씨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는다. 정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국내에서 메르스 감염률이 낮다고만 봤다. 중동에서만 발생하는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팔짱을 꼈다. A씨는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여러 차례 병원을 옮겨 다니며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메르스 감염자는 1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화르르~' 번진 메르스 감염 사태는 국가적 위기를 초래했다. 이때까지도 정부는 병원 이름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병원명을 공개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자 정부는 마지못해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2015 메르스' 사태는 신종 감염병이 얼마나 무섭고 빠르게 확산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한 계기가 됐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 뒤 교훈을 얻은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우리나라 메르스 사태를 두고 "한국 정부가 정보 공개를 늦추는 바람에 메르스 방역 정책의 실패를 불러왔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메르스 사태는 이후 우리나라 경제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했다. 2015년 6월22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메르스로 경제손실 10조원, 해외 여행객 감소로 1조원 손실, 국내총생산(GDP) 1% 감소라는 결과를 빚었다"고 했다.

글로벌 시대에 신·변종 감염병은 어느 특정 나라의 질병에 머물지 않는다. 항공·선박 등 실시간으로 인구가 이동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안전하다'는 안일한 인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국가적 방어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이다.

◆신·변종 바이러스 융합 연구한다=혹독한 대가를 치른 우리나라는 2016년 8월 '신종 바이러스 융합연구단(Center for Convergent Research of Emerging Virus Infection·CEVI)'을 출범시켰다. 메르스·지카바이러스 등 해외 신·변종 감염병에 대한 '진단→예방→치료→확산방지'를 위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융합 연구였다. 한국화학연구원(화학연)이 주관 기관이다. 화학연을 중심으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 9곳이 참여했다. 여기에 서울대, 가톨릭대, 고려대, 한양대, 인하대, 전남대를 비롯해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위탁 기관으로 함께 하고 있다.
▲CEVI 연구원이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화학연구원]

▲CEVI 연구원이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화학연구원]

원본보기 아이콘
 
CEVI는 2022년 7월까지 총 6년 동안 신·변종 감염병 대응 시스템을 연구한다. 참여하는 연구 인력은 약 117명에 이르고 총 사업비는 570억원에 달한다. 신·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2차 감염자 '0(Zero)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빠른 진단이 가장 중요하다=2015년 당시 메르스에 감염됐던 A씨의 경우 진단이 늦어지면서 병원을 여러 곳 옮겨다닌 게 화근이었다. CEVI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빠른 진단'이다. 진단 파트에서는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눠 연구를 진행한다.

해외 유입 가능성이 높은 신·변종 바이러스에 대해 현장에서 신속하게 진단할 수 있는 '간편 장치'를 개발하는 게 첫 번째 과제다. 확진은 아니더라도 '의심 상태'에 있음을 빠르게 파악해 격리시키겠다는 것이다. 빠른 진단 후 보건당국에 이를 알리는 게 목적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안정성평가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현장 진단용 '고감도 스크리닝 기술'로 10분 안에 특정 바이러스를 진단할 수 있다. 의심되는 감염자를 우선 선별하고 이후 정밀 진단하겠다는 목표점을 세웠다.

이어 두 번째로 정밀하고 정확한 진단기술을 내놓는 게 목표다. 정밀 진단 과제에는 한국식품연구원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백신·치료제 개발에 총력=감염병 확산을 사전 예방할 수 있는 백신 개발도 CEVI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현재 신·변종 바이러스의 경우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게 태반이다. 화학연과 한국식품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등이 백신 개발에 동참하고 있다. 메르스와 지카바이러스 등에 대한 백신 후보물질을 찾아보겠다는 계획이다. 형질전환 동물모델 등에서 효능을 보이는 백신 후보물질 3종 이상을 확보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이런 감염병에 백신이 개발되면 예방 시스템 마련에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백신과 함께 치료제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화학연과 한국한의학연구원 등이 신·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 연구에 뛰어들었다. 메르스와 지카바이러스에 우수한 효능을 보이고 낮은 약물내성을 갖는 치료후보물질을 찾는 게 지향점이다. 이를 통해 화합물 디자인과 합성 등을 거친 뒤 후보물질을 선정할 방침이다. 이 같은 전략이 계획대로 수행되면 2019년 7월 후보물질의 기술이전(전임상단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형 확산방지 모델 구축한다=메르스 사태에서 뼈저리게 느꼈듯 감염병은 '슈퍼전파자'로 순식간에 확산되는 속성이 있다. 진단은 물론 예방·치료와 함께 확산방지 모델 개발이 중요한 배경이다. 감염병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지 않으면 곧바로 차단된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가수리과학연구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이 '한국형 확산방지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신종 감염병의 대유행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기법도 연구하고 있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주변국 중심의 사전 예측 지표를 추출한다. 이를 기본 데이터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최적화된 질병확산 알고리즘을 만든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실시간으로 주변국의 대유행 감염병을 사전에 탐지한 뒤 질병군별로 정보를 뽑아낸다. 이 같은 정보가 파악된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신·변종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한국형 확산 모델링을 적용시킨다. 국내 약 3400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질병확산 시뮬레이션을 가동한다. 이후 이 정보는 질병관리본부에 통보된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데이터를 중심으로 신속한 의사결정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CEVI의 지향점은 '신·변종 바이러스 감염 대응 융합 솔루션' 개발에 있다. 앞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은 신종 감염병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표점이다. 2022년까지 이들이 만든 시스템이 더욱 안전한 대한민국을 떠받쳐주는 기둥이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CEVI 연구원이 고병원성 바이러스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화학연구원]

▲CEVI 연구원이 고병원성 바이러스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화학연구원]

원본보기 아이콘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