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문병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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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세요."

나는 조금 멈칫했다. 뼈만 남은 손. 죽음을 앞둔 사람의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싸늘한 느낌. 멈칫거리는 내 모습에서 기척을 느꼈을까. 손 선생이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전염병이 아닌걸요." 얼굴이 후끈했다. 나는 곧 손을 뻗어 손 선생이 건넨 사탕 두 알을 받았다. 그리고 입안에 털어 넣은 뒤 천천히 녹여 먹었다. 벼르고 별러서 간 문병이었다. 칼크 기독교 병원. 405호 병실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낮게 가라앉은 쾰른의 하늘 아래 멀리까지 안개가 번져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전 11시. 손 선생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야위고 늙은 모습이었다. 선뜻 부르지 못했다. 고적한 시간이 흘렀다.

기척을 느꼈을까. 손 선생이 눈을 떴다. 눈길이 마주치자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럴 힘이 없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더 흘렀다. 열두 시. 손 선생이 눈을 번쩍 떴다. 나에게 일으켜 달라고 했다. 아무 힘도 없는 어른의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앉히기는 매우 어려웠다.

 "열두 시가 됐지요?"
 "예, 맞습니다. 어떻게 아세요?"
 "느낌으로요. 밝기가 이 정도 되면 느낌으로 알아요."어디선가 종이 울렸다. 멀리까지 퍼지는 아련한 음색. 슬픈 전갈 같기도 했다. 고개를 드니 멀리 쾰른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병실의 창문 아래로부터 그곳까지 높고 낮은 잿빛 지붕들이 오래된 타일처럼 정연하게 깔려 있었다.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채 오후로 넘어가는 희미한 광선을 받아 물에 젖은 짚더미처럼 불길한 죽음의 냄새를 간직한 듯했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조금만 힘이 붙으면 걷기도 하실 텐데…."

오후 한 시 30분쯤, 손 선생의 부인이 왔다. 얼굴이 핼쑥했다. 의사들이 손 선생의 콧구멍을 통해 목에 튜브를 끼울 때 부인이 나를 대기실로 불렀다. 그날은 손 선생이 마지막으로 정신이 온전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온전한 정신은 내가 만나본 뒤, 그러니까 부인의 손에 이끌려 병실에서 나올 즈음 다시 컴컴한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손 선생은 "언젠가 강원도 산골에 있는 고향에 돌아가 정착하겠다"던 꿈과 함께 뮬하임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곳은 검붉은 담장에 둘러싸인 적막한 장소다. 늘 사람을 좋아한 그가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상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손 선생은 내가 오래전에 독일에서 생활할 때 가족처럼 돌봐주었다. 따뜻하고 너그러웠다. 내 어머니는 생전에 "지나가던 이가 내 아이의 코를 한 번만 닦아 주어도 평생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이라고 가르쳤다. 내게는 손 선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선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마다 뼈만 남은 그의 가슴을 떠올린다. 이상이 도쿄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 김유정의 그 가슴. '유정의 젖가슴은 초롱보다도 앙상하다. 그 앙상한 가슴이 부풀었다 구겼다 하면서 단말마의 호흡이 서글프다….(失花)'

손 선생의 초롱은 작았지만 그 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넓었다. 그리고 그곳은 언제나 사랑으로 충만했다.

추모하며.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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