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다섯 사람 중에 두 사람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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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자들은 매주 일요일 성당에 간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모를까, 미사에 참례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한다. 나도 지옥에 가기 싫다.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이루어진다. 말씀의 전례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새기는 과정이다. 성찬의 전례는 예수의 마지막 만찬을 재현하며 감사의 제사를 올리는 부분이다. 성찬 예절 때 사용하는 빵(이라기보다는 밀가루를 납작하게 눌러 동전 만하게 만든 조각)을 '성체'라고 한다. 사제가 성체를 주면 받아서 혀 위에 얹은 다음 은근히 녹인다. 성체가 녹는 동안 사람마다 깊은 생각에 빠지거나 기도를 하며 더러는 존다. 나는 기도를 한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빈다. 세상을 떠난 사람 가운데 특별히 다섯 사람과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한다. 다섯 사람 중에 둘은 대학 동기이다. 한 녀석은 시를 썼는데 병을 얻어 아까운 재주를 펴 보이지 못하고 요절했다. 다른 녀석은 아내와 대학생 딸, 늦둥이 아들을 남기고 죽었다.

총각으로 죽은 녀석은 K대학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했다. 녀석은 창백한 얼굴로 자주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래서 의사가 '금식' 팻말을 떼며 "아이스크림과 우유는 괜찮다"고 했을 때 단숨에 달려가 우유 몇 팩과 큰 통에 든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었다. 녀석은 멋쩍게 웃었다. 영결할 때 녀석의 어머니는 아들이 저승에서도 배가 고프면 어떡하냐며 우셨다.

다른 동기는 졸업 후 만난 적이 없다. 내가 모교의 문예창작학과에서 강의할 때 수강학생 가운데 녀석의 맏딸이 있었다. 그 아이가 "아무개의 딸입니다"하고 인사해서 알았다. 동기 녀석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유가족은 시신을 어디 안치했는지 몰라 헤맸다고 한다. 맏이가 신문사에 다니는 선생은 금방 알아낼까 싶어 연락을 했다. 다행히 병원을 찾았다. 장례식은 절에서 했다.두 녀석은 왜 그리도 오래 내 가슴에 머무를까. 아마도 짧은 기억이 인연으로 남았기 때문이리라. 총각 녀석을 벽제에서 화장한 뒤 유골을 수습할 때 내가 입회했다. 동기들 모두 아직 젊을 때라 예식을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어쩌다 불려 들어가 '노자'를 바치고 지켜보았다. 나와 동기들은 유골함을 들고 경기도 김포에 있는 대곶에 가서 바다로 떠나보냈다.

사고를 당한 친구는 입관을 지켜보았다. 부검을 했기에 모습이 많이 상했는데, 젊은 상조회사 직원이 "가족이 고인의 모습을 보면 충격이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내게 "친구 분이 들어오시죠"하고 권했다. 오전이었는데 마침 장례식장에 가족 말고는 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내 동기는 세상모르고 잠든 어린애 같은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동기들에게 모두 '잘 가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녀석들이 도착한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다. 정말로 아픔 없는 곳,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인지 모르겠다. 다만 어떤 염원이 깃든, 그런 곳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인간의 어떠한 죽음도 혼미하지 않으니까. 죽음은 늘 분명함으로 우리에게 말하지 않던가.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녀석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왜 이토록 가슴이 아픈가. 가슴은 무덤인가.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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