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낮달/유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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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기 있었다 네 머리 위에
거기 있었다 네가 떠나간 후에도거기가 거기인 줄도 모르고
거기 있었다

물이 흐르면서 마르는 동안
바퀴가 구르면서 닳는 동안

지구가 돌면서
너의 얼굴을 바꾸는 동안그동안
거기 있었다
나는

거기라는 말보다도 한참 먼 거기에


■김소월이 쓴 '산유화'라는 시는 다들 잘 알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라는 구절도 익히 알 것이고. 그런데 "저만치"는 시적 화자와 꽃 사이의 심정적 거리를 드러내는 말이다. 심정적 거리란 확정할 수 없는 깊이다. "거기라는 말보다도 한참 먼 거기"가 그런 곳이다. 대체 그 "거기"는 어디쯤일까? 아마 시인도 모를 것이다. 다만 "거기라는 말"로는 도저히 가늠할 길 없는 아득한 "거기"라고밖에는. 당신에게도 그런 "거기"가 있을 것이고, 그곳에 "낮달"처럼 당신을 바라보던 누군가가 꼭 한 명은 있을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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