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즐거운 요리/권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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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 제비집 요리를 본 적이 있다. 퇴근길에 문득 그 요리가 생각난다. 제비는 참 황당했겠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어? 통째로 집이 사라졌다? 거처할 집을 누가 먹어 버렸다? 뿔뿔이 흩어진 새끼들은? 수소문은? 나도 이런저런 집을 먹은 적이 있다. 집은 맛있었다. 집은 달았다. 꿀도 먹고 마침내 꿀벌집도 먹었다. 따지고 보면 내 큰형님도 노름으로 집 한 채 말아먹은 적 있다. 집을 말아먹고 한동안 노숙자로 전전했다고 한다. 지하철역, 신문지 둘둘 감고 누운 걸인, 곧 허물어질 건축, 헝클어진 머리카락 속에서 제비 몇 마리 풀풀 날아오른다.

■ 겉으로 쓰인 바는 재미있지만 실은 몹시 슬픈 시다.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 있는 시이니 딴말이나 조금 덧붙이려 한다. 시에 적혀 있는 "노숙자"를 문득 마주치게 되면 나는 민달팽이가 떠오르곤 한다. 민달팽이는 껍데기 즉 집이 없는 달팽이다. 어릴 적 어느 여름 저녁이었던가 민달팽이를 보곤 까무라치도록 놀랐던 적이 있다. 아침 등굣길이나 비 온 뒤 풀밭에서 가끔 보았던 달팽이는 등에 집도 있고 몸 색깔도 연한데, 집도 없고 고동색에 가까운 민달팽이는 정말이지 흉물스러웠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민달팽이에게 무척 미안하다. 얼마나 쓰라렸을까,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 여리디여린 살로 집도 없이 생짜 맨몸으로 한생을 기어 건너야 했으니 온몸이 통째 멍투성이였던 건 어쩌면 당연지사인데, 그걸 보고 흉하다고 했으니 미안하고 미안하다. 그리고 참, 달팽이는 자웅동체라고 한다. 이건 또 왜 이렇게 슬픈지, 나도 모르겠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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