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과수원 수족관/이범근

 물고기에겐 통점(痛點)이 없다는 말
 수위가 아슬한 수족관 속으로
 달빛을 들어 올린 나무 그림자가 잠긴다
 나무는 살을 다 발라낸 어류여서
 일그러진 무릎 속엔 촘촘한 물결의 기억이 있다

 나뭇가지에 열린 물고기들
 가지에서 가지로 흘러가는
 열매들
 낙과(落果)가 없는 수족관엔
 발자국이 드물고
 목발처럼 걸음을 잊은 나무들은
 숨을 오래 참는다
 아무도 추락하지 않고
 죽은 자를 묻지 않고
 그의 숨으로 떠올리는 곳 머리를 잃어버린 몸의 영법(泳法)에 대하여
 몸을 잃어버린 눈동자가 글썽이고
 생니 뽑힌 자리를 더듬는 혓바닥처럼
 홍시가 떨어진 자리로
 물살이 온다 물살은
 제 뼈까지 다 울어 버린 몸이어서, 살이어서
 깊은 가시의 기억이 있다
 물속을 흐르는 눈물
 살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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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다 보면, '어라, 이건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건데' 싶은 구절들이 종종 눈에 띄곤 한다. 이 시에서는 "나뭇가지에 열린 물고기들/가지에서 가지로 흘러가는/열매들"이라는 부분이 그렇다. 물론 내 마음속에 적어 둔 문장이나 그 문장을 이룬 배경이 이와 똑같지는 않다. 얘기하자면,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외할머니를 따라 청송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사흘인가를 지낸 적이 있었는데,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때 참 심통이 나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그 며칠 동안 마을 초입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겸한 다 쓰러져 가는 '근대화 슈퍼' 앞 평상에 누워 내내 데굴거리기만 했었는데, 신작로를 따라 헤아리기 힘들 만큼 쭉 늘어서 있던 플라타너스들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문득 바람결에 나부끼는 이파리들 하나하나가 물고기 같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참 신기하게도 그 여름을 떠올리면 정말 플라타너스 나무들마다 수백수천의 물고기들이 파랑파랑 모여 여름밤을 헤엄쳐 가는 장면이 마냥 그려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직유든 은유든 그것은 단지 꾸미기 위해 애써 만든 장치가 아니라 마음속에 꼭 그렇게 맺힌 것이라고 말이다. "나무는 살을 다 발라낸 어류"이고 그 "일그러진 무릎 속엔 촘촘한 물결의 기억이 있다"는 나무나 나이테를 일부러 치장해 적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여겨졌을 때에야 쓸 수 있는 문장이다.

채상우 시인
[아시아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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