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 미스터리? 이름만 7개, 일제 순사에서 승려·영세교 교주까지

▲최태민씨는 이름만 7개이고 직업도 다양하며 범죄혐의도 44건이다. (사진=채널A 방송화면 캡쳐)

▲최태민씨는 이름만 7개이고 직업도 다양하며 범죄혐의도 44건이다. (사진=채널A 방송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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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윤주 인턴기자] 이름만 7개, 일제 순사에 이어 승려·영세교 교주까지.범죄 혐의도 44건에 달한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으로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최태민씨의 이력이다.

23일 채널A는 ‘인생 자체가 미스터리’라며 최태민씨의 정체를 파헤쳤다.최씨의 첫 번째 이름은 최도원. 이후 '최상훈·최봉수·최태운·공해남·방민'으로 이름을 바꿨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최태민은 1975년 대한구국선교단 총재에 취임하면서 개명한 이름이다. 최씨는 일생동안 6번 이름을 바꿔 총 7개의 이름을 사용했다.

직업은 그보다 훨씬 다양했다. 일제 강점기인 1942년, 고향인 황해도에서 일제 순사를 하다 해방 후 경찰로 변신한 최씨는 1954년 초 여자 문제로 가정불화를 겪다 삭발을 하고 승려가 됐다. 이후 비인가학교 교장과 공화당 중앙위원을 거쳐 창고업체를 운영하다 1965년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입건되면서 4년간 도피 생활을 했다.

1969년에는 본격적으로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천주교 중림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1971년엔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를 합친 '영세교' 교주가 돼 '목사' 직함을 사용했다. 그리고 1975년 3월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첫째 영애인 박근혜에게 접근해 대한구국선교회를 창설했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파악한 최씨의 범죄 혐의는 횡령 14건과 변호사법 위반 11건, 권력형 비리 13건을 비롯해 총 44건이다. 하지만 최씨는 죽을 때까지 구속 한 번 되지 않았고 사후에는 2000㎡ 규모의 호화 무덤에 묻혔다.






김윤주 인턴기자 joo041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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