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워치]풍자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

백종민 국제부장

백종민 국제부장

원본보기 아이콘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이 전국을 메아리치던 지난 19일.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지상파인 NBC방송은 심야 코미디 버라이어티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등장했다.

물론 본인이 직접 등장한 것은 아니다. 유명 배우 알렉 볼드윈이 트럼프처럼 분장하고 출연했다. 특유의 머리 모양도, 말투도 영락없는 트럼프였다.생방송 코미디 쇼에 등장한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풍자는 '조롱'이었다. 방송은 트럼프 내각 초대 국무장관으로 거론되는 전 공화당 대선 후보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트럼프가 어색하게 말없이 악수만 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미국민은 다 안다. 롬니가 대선에서 어떻게 트럼프를 공격했는지. 아마도 시청자들은 배꼽을 잡았을 게다.

트럼프는 반박했다. 자신의 트위터에 "완전히 일방적이고 편향된 쇼였다.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동등한 시간(egual time)을 줄 건가?"라는 글을 올렸다. 정치 풍자에 인색한 한국 방송에 익숙한 기자가 보기에는 트럼프 당선인이 뿔이 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세계 최강 국가인 미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 SNS를 통해 불만을 표출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이런 높은 수위의 풍자가 방송이 나가도 문제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시월'이라는 영화에서 소련의 최신형 핵잠수함을 미국에 망명하도록 유도하는 중앙정보국(CIA) 정보분석가 잭 라이언 역을 연기했던 볼드윈은 트럼프에게 이렇게 받아쳤다. "선거는 끝났다. 더 이상의 동등한 시간도 없다." 트럼프와 볼드윈이 언급한 '동등한 시간'의 발단도 사실은 트럼프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공화당 경선 후보 중 단독으로 SNL에 출연해 종횡무진 활약했다. 트럼프도 SNL 출연에 만족한 듯 '끝내주는 밤이었다(Amazing evening)'이라고 트윗했다. 당시 트럼프와 경쟁하던 공화당 경선 후보들은 NBC에 트럼프와 '동등한 시간'의 출연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장면을 보며 우리의 상황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제작돼 같은 포맷으로 방송되는 SNL에서는 몇 년 전 텔레토비라는 코너가 대통령을 풍자했다 폐지됐다. SNL 방송사의 오너는 청와대 경제 수석의 퇴진 압력에 자리를 떠나야 했다. 영화 '변호인'의 주연 배우 송강호씨는 변호인 출연 이후 대형 영화사의 주연 자리를 맡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풍자나 비유는 볼드윈이 행한 것에 비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볼드윈은 보복을 생각할 수 없는 미국 사회의 시스템을 믿지만 우리는 까라면 까야 한다. 트럼프의 미국보다 더 걱정되는 게 지금 대한민국이다.







백종민 국제부장 cinqang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