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대 연구비 횡령 '위험 수위'.. 4분의1이 청렴도 낙제점

전북대, 카이스트, 한국체대 최하 등급

국민권익위원회 조직아이덴티티(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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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국립대 교수 A씨는 2012년 7월부터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 5개 기관이 발주한 연구과제 책임자로 있으면서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제자를 허위 연구원으로 등록하는 수법으로 연구비를 빼돌렸다. 이렇게 A교수가 약 2년간 횡령한 인건비는 9800여만원. 그는 같은 수법으로 다른 학생 2명도 연구과제에 참여한 연구원으로 서류를 꾸며 1억4000만원을 챙겼다. 2014년 감사원 감사에서 A교수의 비위가 적발됐음에도 그가 빼돌린 나랏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정부가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그 지원을 받는 국·공립대들은 연구비 횡령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투자 효과를 떨어뜨리는 모습이다. 10일 국민권익위원회가 2015년 기준 전국 36개 국·공립대학 연구 및 행정 분야 청렴도를 측정한 결과 전북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한국체대가 최하 등급인 5등급을, 서울대, 경북대, 부경대, 충남대, 부산대, 목포대 등 6곳이 4등급을 받았다. 전체의 4분의1이 '낙제'를 면치 못한 것이다. 가장 높은 1등급에 속한 대학은 단 한곳도 없었다.

권익위는 이번 청렴도 측정을 ▲설문조사 결과 ▲부패 사건 발생 현황 ▲신뢰도 저해 행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산출했다. 설문조사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약 3개월 동안 1만545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연구 및 행정 분야 청렴도는 2014년 5.38점이었지만 2015년에는 5.54점으로 0.16점 상승했다. 그러나 부패 경험 중 특히 연구비 횡령(10.5%)과 연구비 위법·부당 집행(12.0%) 경험률이 모두 높게 나타났다. 인사 관련 금품·향응·편의 제공 경험률(2.8%)과 예산의 위법·부당 집행 경험률(7.5%)을 훌쩍 뛰어넘는다.부패 유형은 연구비 횡령이 44.7%로 가장 많았고 금품 수수(23.7%), 직권 남용 (18.4%), 공금 횡령(10.5%) 등이 뒤를 이었다. 또 직급별로는 교수가 저지른 부패 행위가 76.3%, 직원이 23.7%였다.

연구비 횡령은 국내 R&D 현장의 대표적·고질적 비리 유형이다. 2008∼2012년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총 548건의 비리가 적발됐는데, 이 중 연구비 비리가 387건으로 단일 유형 중 가장 많았다.

R&D 비리가 끊이지 않다 보니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했다 환수하는 일도 다반사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2013∼2015년 환수 대상에 오른 R&D 금액은 1211억원에 달했다. 이중 실제로 환수된 연구비는 507억원으로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잘못된 연구비 집행으로 환수 조치를 받은 돈만 480억원이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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