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의 디스코피아⑪] Free - Fire and Water (1970)

천재적인 젊은 재능들이 겹친 완벽한 순간

10대에 만난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고 백만 장의 앨범을 팔고 수십만 명 앞에서 연주한다. 록밴드에 관한 영화를 이렇게 만들면 유치하다는 소릴 듣겠지만 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영국의 4인조 밴드 프리(Free)가 「파이어 앤 워터(Fire and Water)」를 통해 이 모든 일을 해치웠을 때 그들은 스물을 갓 넘겼을 뿐이었다. 선 굵은 사운드로 무장한 이 젊은이들은 블루스 록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수록곡들은 대체로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다. 묵직한 리프를 내세운 “파이어 앤 워터(Fire and Water)”와 음습한 분위기의 “오 아이 웹트(Oh I wept)”는 가볍게 듣긴 힘들지만 기분 좋은 피로감을 선사한다. 그 가운데 “리멤버(Remember)”나 “올 라잇 나우(All Right Now)”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며 들을 수 있는 곡. 특히 후자는 영국의 라디오 전파를 전세 내며 프리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흥겨운 리듬의 리프와 후반부의 존재감 넘치는 기타솔로가 인상적이다.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미스터 빅(Mr. Big)”의 후반 3분가량 이어지는 프레이즈는 듣는 이를 압도한다. 후일 폴 길버트(Paul Gilbert)와 빌리 시헌(Billy Sheehan)을 중심으로 결성된 슈퍼 밴드 “미스터 빅”의 이름은 바로 이 곡에서 따온 것이다. 멤버들의 재능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앤디 프레이져(Andy Fraser)의 팔색조 같은 베이스 라인과 폴 로저스(Paul Rodgers)의 보컬도 압권이지만 가장 돋보이는 존재는 역시 기타리스트 폴 코소프(Paul Kossoff). 여섯 살 때부터 조기 교육으로 클래식 기타를 배웠다는 그의 비브라토는 짜릿하고, 그가 연주하는 깁슨 레스폴은 모든 레스폴 유저들이 막연히 꿈꾸는 아름답고 비옥한 톤을 실제로 들려준다. 또한 현란하기보다 선 굵고 절제된 연주는 기타가 이토록 품위 있는 악기였나 싶게 만든다. 기타 히어로의 자질을 두루 갖춘 코소프의 존재만으로도 이 앨범은 들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활동 기간이 짧았던 탓에 한국 내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1970년대 초기 블루스 록 특유의 묵직함과 진지함이 가득한 이 앨범은 크림(Cream)같은 선배들의 작품과도 어깨를 견줄만하다. 천재적인 젊은이들의 재능이 완벽하게 겹친 한 순간의 기록. 멜로디의 훅 대신 리프와 사운드의 질감에 집중했기에 질리지 않고 묘하게 계속 듣고 싶어진다. 유일한 흠이라면 수록곡이 일곱 곡뿐인 아쉬움. 일곱 곡만으로도 엄청난 포만감을 선사하지만, 한두 곡 더 듣고 싶다는 불평을 안 할 수가 없다.

여담. 20대 초반에 이 정도 명반을 만들 수 있는 밴드라면 시대를 대표하는 거물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프리는 멤버 간 견해차와 코소프의 마약중독으로 1971년 해체한다. 폴 로저스는 이후 배드 컴퍼니(Bad Company)와 솔로활동, 퀸+폴 로저스(Queen+Paul Rodgers)등 굵직한 커리어를 거치며 영국이 자랑하는 보컬로 성장한 반면, 가장 완벽해 보였던 멤버인 코소프는 마약중독에 따른 심장발작으로 스물다섯 살에 사망했다. 대가의 자질을 지녔던 젊은 기타리스트의 너무 이르고 허무한 끝이었다. 그의 연주가 주는 감동이 깊은 만큼, 그의 짧은 인생이 주는 가르침도 얕지 않다. 바로 중독에 기대서는 위대해질 수 없다는 것. 마약에 빠져 본 뮤지션은 많아도 결국 일가를 이룬 이들은 모두 마약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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