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부실 사이…산은의 딜레마

부실 기업에 공적자금 투입…업황 악화되면 부실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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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구귀 기자] ‘산업개발 육성, 지속가능한 성장촉진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한국산업은행법 제1조에 명시된 산업은행의 기능이다. 국책은행으로서 산업 육성과 기업 성장은 책임이자 의무다. 이 과정에서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을 살리기 위해 세금인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도 한다.

문제는 공적자금을 회수하지 못했을 경우다. 스스로 부실해질 뿐만 아니라 혈세 투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국책은행의 딜레마다.

산업은행이 ‘국책은행 딜레마’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수면 아래에 있던 기업 구조조정 현안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고 있어서다. 당장 금호산업 매각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초 산은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해 조속히 매각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일이 틀어졌다. 매각가를 놓고 채권단 사이에 이견이 표출되면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산은은 두 가지 카드를 꺼내들었다. ‘7935억원에 매각하느냐, 박삼구 회장과 협상해 가격을 조정하느냐’다. 이번주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이지만 자칫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금호산업 가치는 더 떨어지고, 산은이 입을 손해는 더 커진다.

산은 관계자는 “금호산업 외에도 대우증권, 대우조선해양, 동양시멘트 등의 매각 일정이 촘촘하다”며 “금호산업 매각이 더뎌지면 다른 매각도 꼬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산은이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에 출자한 지분은 STX조선해양(48.2%), STX엔진(41.9%), STX(39.6%), 오리엔탈정공(34.7%), 대우조선해양(31.5%), 금호산업(4.38% ) 등이다.

빌려준 돈을 위험에 따라 다시 계산한 산은의 위험가중자산은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해 말 기준 217조원으로 2013년 124조원 대비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은행 건전성의 척도인 BIS비율(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14.40%(5월말 기준)로 지난해 14.67%보다 하락했다.

산은 내부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매각이 계속 늦어지면서 산은의 부실이 커지고 있다”며 “그렇다고 비올 때 우산을 뺏을 수는 없지 않냐”고 토로했다.

무엇보다도 업황이 악화된 것이 악재다. 업황이 어려워지면서 유동성 위기가 커질 뿐만 아니라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M&A(인수합병)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자 때문에 쌓인 부실이 후자 때문에 해소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산은의 현 주소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조선해양이다. 지금까지 투입된 은행 지원금이 19조원에 달하지만 정상화를 위해서는 4조원이 추가 투입돼야 한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교수(경영학부)는 “기업이 부실해지면 산은을 통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 기업의 구조조정을 해왔다”며 “하지만 조선업처럼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 산은까지 부실화되는 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이에 따라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을 분리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산은에서 구조조정 기능을 떼어내 전문적인 집단에 맡긴다면 기업 회생이 보다 원활하게 이뤄지고 산은의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도 “회생 가능한 기업에는 과감하게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면서 구조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게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산은의 기능 일부를 떼어내 별도 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산은은 유동성 지원을 하되, 자금 지원을 받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전문 집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단기 유동성 기업의 구조조정을 전담하는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을 검토 중”이라며 “10월 중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강구귀 기자 ni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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