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두 번째 앙코르 공연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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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수습기자] “쾅쾅.” 1950년 6월25일 전쟁이 터졌다. 경숙 아베(김영필)는 황급히 피난 보따리를 싼다. 노래 장단을 맞출 장구도 챙기고. 그런데 정작 경숙 어메(고수희)와 경숙이(주인영)는 내팽개친다. 두 사람이 따라나설 채비를 하자 아베는 버럭 화를 낸다. 전 재산인 집이나 지키라고. 경숙이가 매달리니 아베는 “깝깝한 년. 너희는 둘! 내는 쏠로! 진정 외로운 사람은 내다”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고 홀로 피난길에 나선다.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가 지난 6일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극은 전쟁 통에 아내와 딸을 버린 무책임한 아버지를 그린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 시청률 40%를 돌파한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등장한 아버지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최근 한국 대중문화계가 자신보다는 가족을 앞세우며 늘 헌신적인 아버지를 묘사했다면 ‘경숙이, 경숙 아버지’는 반대로 자신의 욕망과 자유에 충실한 아버지를 그린다.전쟁이 끝나고 경숙이, 경숙 어메, 경숙 아베가 다시 상봉한 뒤에도 아베의 방랑은 계속된다. 수용소 동기인 ‘꺽꺽’ 삼촌(김상규)을 집에 두고 떠나더니 어느새 ‘자야’(황영희)라는 화류계 여인을 데리고 와 경숙 어메 마음에 멍이 들게 한다. 그러다 또 바람처럼 사라진다.

관객들은 극 초반 도무지 아버지다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경숙 아베를 미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극이 마지막을 향해 갈쯤에는 나도 모르게 아베를 동정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경험한 아버지를 극에 자연스레 녹인 박근형 감독의 연출과 극본 덕분이다.

아베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하며 사랑의 결핍을 맛 봤다. 그리고 꿈 찾아 떠나라는 아버지의 말만 붙들며 살아왔다. 그런 아베에게 무책임함과 방랑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1950년~60년대 한국 사회를 떠올리면 한편으로는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나 '가족끼리 왜 이래'의 ‘순봉(유동근)’ 보다 경숙 아베가 더 현실적이고 솔직하게 느껴진다.경숙 아베를 미워할 수 없는 데는 2006년 초연부터 경숙 어메 역을 맡은 배우 고수희의 호소력 있는 연기 덕도 크다. 고수희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이 평생소원인 경숙 어메를 애증 가득한 눈빛으로 연기하며 관객들의 공감을 샀다.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2006년 초연 당시 올해의 예술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선정 올해의 연극, 동아연극상 등을 휩쓸며 화제에 올랐다. 2007년 재공연 때에는 평균 객석점유율 110%를 기록했다. 수현재씨어터는 개관 1주년 기념작으로 이 극을 선정하였으며 4월26일까지 상연한다.



임온유 수습기자 immildnes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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