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노후준비에 '웜홀'은 없다

박용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

박용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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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빈곤율 50% 육박' '늘어날 반퇴세대' '고달픈 노년'….

연초부터 주요 언론이 쏟아내고 있는 고령화와 관련된 기사 꼭지들이다. 마음 한 편이 시리다. 지금의 노인들은 자녀에게 올인했다. 그러나 그 자녀들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와 2008년 국제금융위기 등 두 번의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거치면서 취업난과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내몰렸다.

결국 낮아진 소득과 고용불안의 여파로 더 이상 부모를 부양하기 어렵게 됐다. 더욱이 그들의 청년시절에는 애당초 '노후준비'란 말은 없었다. 그 자리에 나를 부양할 자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후에 자녀의 부모님 부양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자녀들의 용돈을 바라기에도 어려운 시절이 돼버렸다. 그러기에 지금의 노인은 더 춥고 배고프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든든한 공적ㆍ사적연금소득으로 노후를 보내며 취미를 찾지만 우리의 현실은 환경미화나 경비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찾고 있으니 노후의 삶의 질이 천양지차(天壤之差)다.지난해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노후준비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후준비에 대한 인식 부족은 더 심화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노후준비가 없는 가구가 2012년 27.6%에서 2013년 34.3%로 6.7%포인트 증가했다고 한다. 준비가 없는 노후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소득 상실로 인한 경제적 궁핍이다. 만약 건강을 잃을 경우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큰 고통을 주게 된다. 또한 사회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면 고독하고 할 일 없는 노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일정한 책임과 일이 주어지지 않는 역할 상실감은 말할 것도 없다. 노후생활에서 빈곤, 질병, 무위ㆍ고독, 역할상실이란 노인 4고(苦)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차곡차곡 준비하는 것이 상책이다.

국내 개봉한 외화 중 아바타, 겨울왕국에 이어 세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 있다. SF영화이면서도 시공을 초월한 가족애가 그려져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인터스텔라이다. 영화 내용 중에 시간여행을 하는 통로로 웜홀(Worm Hole)이란 개념이 나온다. 웜홀은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벽에 있는 구멍으로 '벌레구멍'이란 뜻처럼 벌레가 사과의 정반대편으로 이동할 때 사과의 표면을 따라가는 것보다 사과의 중심에 뚫린 벌레구멍을 통하면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후준비에 인터스텔라의 웜홀과 같은 시간단축의 방법은 없다. 준비한 시간의 양만큼 은퇴 후의 삶의 질은 비례해서 높아진다. 은퇴 후 삶이 재앙이 되지 않고 지금의 노인세대가 겪는 고통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두 말이 필요 없다. 오직 준비뿐이다.

경제활동이 가능할 때 미리 노후대비 연금을 준비해서 노후소득을 현실화시켜야 한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소득대체율이 높은 연금소득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놓아버린 운동에 팔을 걷어붙이고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도 하나 쯤은 마련해 둬야 한다.

당신이 노후를 따뜻하게 보내려면 질 좋은 담요가 필요하다. 그 담요는 시간이라는 씨실(가로)에 노후준비라는 날실(세로)로 짜여진다. 씨실이 길면 당신과 가족, 이웃이 함께 할 넓은 담요가 되고, 날실이 촘촘하면 온기가 새지 않는 따뜻한 담요가 될 것이다.

박용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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