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50달러 붕괴, 정유 '으악'…해운·철강도 '시무룩'

50달러 붕괴…정부선 유가하락이 경제 호재라는데…
정유4사, 작년 손실액 1조원 넘을 듯…"비상대책.리스크 관리 소용없어"
해운·철강, 장기침체로 투자위축 반사이익 없어…사업계획 수정 불가피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황준호 기자] 국제 유가가 심리적 지지선인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서 정유, 화학, 해운, 조선 등 관련 업계가 '멘붕'에 빠졌다. 유가하락의 직격탄을 맞는 정유업계의 경우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그동안 유가하락의 수례업종이었던 해운, 철강 등도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유가하락은 우리경제의 큰 호재"라고 밝혔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다르다. 유가 하락 속도가 너무 급격해 저유가의 혜택마저 크게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저성장 국면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과 유로존의 경기침체 등 다른 위험요인과 겹칠 경우 디플레이션 공포가 확산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타격이 가장 큰 곳인 정유업계다. 7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당초 국내 정유사 4곳 중 3곳은 올해 두바이유 가격을 배럴당 65∼70달러로 보고 새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1곳은 80달러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바닥을 모르는 유가 하락에 모든 사업계획을 전면 수정해야만 하게 됐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현재 유가 하락의 바닥이 어디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동안 비상대책반을 가동해 리스크 관리에 나섰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됐다"고 토로했다.

통상 정유사는 2~3개월 전 사들인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과 화학제품을 생산한다. 때문에 짧은 기간 유가가 오르내림을 반복하더라도 유가변동으로 인한 이익 또는 손실이 발생한다. 원유 구입부터 제품판매까지 1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제품 정제, 판매와 무관한 손실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정유사들은 의무적으로 원유 재고를 40일가량 비축해야 한다.

정유 4사의 지난해 정유부문 1년 누적손실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유가 1달러 하락시 재고평가손실 등을 포함해 자사 정유부문에서 연 250억원, 계열 전체로는 450억~470억원 정도 손실이 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른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가 하락=호황'이라는 해운, 조선, 철강업계의 공식도 옛말이 되버렸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 철강 업체들의 경우 유가 변동이 수익성 여부에 가장 큰 요인이었다"며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장기간 경기 침체로 경쟁 업체 대비 투자를 하지 못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유가 하락에 따른 반사 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황 부진과 경쟁력 하락이 유가 하락보다 더 영향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해운업계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원유값 하락에도 수익성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해운기업의 체감경기가 더 악화됐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에코선박 등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유가하락으로 인한 효과가 컸을 것"이라며 "하지만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유가하락으로 인한 수혜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투자위축, 시황 부진 요인이 더 큰 상황이다. 글로벌 철강 수요가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중국발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되면서 유가 하락에 따른 생산비 감소가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심지어 철강업계는 제철소에서 나오는 부생가스(BFG, COG, LDG)를 발전연료로 재사용해 유류 사용이 적다. 포스코는 제철소에서 사용되는 전력의 70% 이상을 자가발전으로 해결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유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은 정유사만의 문제였지만 지금과 같은 경기 둔화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졌다"면서 "유가 하락으로 인해 소비는 다소 여유가 생겼을 수 있지만 소득이 늘어나기는 커녕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대로 가다가는 올 2분기에는 각 기업마다 또 다시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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