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면류관과 대통령의 눈과 귀

조선시대 왕들이 주요 의례 때 썼던 면류관을 보면 그 앞 뒤로 색색의 구슬들이 내려뜨려져 있다. '류(旒)'라고 불렸던 이것은 중국 천자의 면류관에는 앞뒤로 각각 12개씩이, 조선의 임금에게는 9개씩이 달렸다. 그리고 면류관의 양옆에는 청옥을 귀 부분에 늘어뜨렸는데 걸을 때면 소리가 났다.

왜 이렇게 구슬을 앞과 옆에 달았을까. 왕의 위엄에 기품을 더해주는 보기 좋은 장식이어서, 또 옥이 부딪치며 내는 청아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눈과 귀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앞에 달린 구슬들은 왕의 시야를 방해했고, 옆에 달린 옥은 소리를 듣는 것을 방해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나라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왕더러 보지를 말고 듣지를 말라니. 아니다.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멀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보되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듣되 세상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다 듣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즉 보지 말고 듣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잘 보고 더 잘 들어라는 것이었다. 보고 듣는 것들을 가려 무엇을 더 깊이 보고 무엇을 더 유심히 들어야 하는지를 늘 생각하라. 왕에게 그걸 명심케 하려는 것이었다. 이제 면류관을 쓰는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면류관에 담긴 덕목은 여전히(아니 더욱더) 새겨볼 필요가 있다. 면류관의 구슬과 옥은 어떤 시대건 최고권력자의 눈과 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얘기해 준다. 그것은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최고권력자가 자신의 눈과 귀를 통해 무엇을 보고 듣고, 그래서 결국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에 일정한 총량이 있다면-이를 테면 '사고ㆍ심정(思考ㆍ心情)총량의 법칙'이 있다면-그 눈과 귀와 가슴과 머리를 무엇으로 주로 채워야 하는가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것이다. 반드시 보고 들어야 할 것, 반드시 숙고할 것이 뭔가를 늘 생각하라는 것이다. 거꾸로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 내고 밀어 내야 할 것들로 채워진 머리에는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할 중요한 것들이 빠져 버린다는 것을 늘 스스로 경각하라는 것이다.

마침 오는 26일부터 서울 종묘에서 면류관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곳에서는 3일간 야간에 종묘제례악 공연이 펼쳐지는데 아마 왕의 역을 하는 이가 면류관을 쓰고 나올 것이다. 옛날 같으면 면류관을 썼을 지위에 있는 이라면 그걸 보면서 자신의 눈과 귀가 보고 들어야 할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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