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심리 스릴러와 감성 로맨스의 절묘한 만남(리뷰)

영화 '해무'

영화 '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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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올 여름 이례적으로 한국 영화 네 편이 맞붙어 그 어느 때보다 관객들의 관심이 뜨겁다. '군도' '명량' '해적'에 이어 마지막 주자 '해무'가 28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해무'는 지난 2001년 발생한 제7태창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동명의 연극 '해무'를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제7태창호 사건은 중국인49명, 조선족11명이 배에 숨어 전라남도 여수로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질식사하자, 선장과 선원들이 사망한 26명을 바다에 버려버린 사건이다.영화 '해무' 역시 밀항을 시도하다 불의의 사고로 밀항자들이 죽자, 괴물로 변해가는 선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출항 전 만선의 꿈에 부풀어 있던 선원들의 순박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함께 모여앉아 소주에 라면 한 그릇도 행복하게 먹고 마시던 이들은 해무(바다 안개) 속에서 눈을 희번덕거리며 각자의 욕망을 쫓게 된다.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반전의 연속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관객들이 예상한 일이 실제로 벌어져서 더욱 섬뜩한 '예고형 공포'가 밀려온다. 멈춰 서 있는 배 위. 한정된 공간에서 예기치 않은 밀항자들의 죽음을 겪게 된 선원들. 선장(김윤석 분)은 강렬한 카리스마로 배 위의 모든 사람들을 휘어잡지만 배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를 옥죄면서 가장 먼저 괴물로 변한다.

개성 넘치고 순박하던 선원들도 서서히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각자의 욕망을 드러낸다. 돈에 대한 욕망과 억눌린 성욕 등을 가감없이 내보이면서 강렬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이들. 살인을 하고도 그저 생선 한마리를 죽인 것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변해가는 선원들의 모습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락까지 떨어지고 변할 수 있는가를 극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젊은 남녀 주인공들의 가슴 절절한 로맨스가 강조된다. 첫 만남부터 서로 끌리고 교감하는 이들 모습을 보여주는데 꽤 많은 시간이 할애된다.

모두가 괴물로 변하는 상황에서 동식(박유천 분)과 홍매(한예리 분)의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공포와 모든 게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둘의 결속력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가슴 아린 베드신도 탄생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배 위에서도 두말할 것 없이 빛났다. 에너지 가득한 배우 김윤석은 광기 어린 선장 역을 맡아 영화 '해무'의 중심을 잡았다. 스크린에 첫 도전하는 박유천은 내면 연기는 물론 강렬한 액션 연기까지 훌륭히 소화해내며 제몫을 다했다. 한예리와의 로맨스 호흡과 처음으로 시도한 베드신 역시 칭찬받을 만 했다.

충무로 기대주 한예리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투리로 조선족 역할을 완벽히 그려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진짜 뱃사람인 줄로 오해했다는 김상호는 갑판장으로 분해 선장 김윤석을 끝까지 받쳐준다. 인간미 넘치는 기관장을 연기한 문성근과 치밀어 오르는 욕망 때문에 계속해서 부딪히는 이희준과 유승목의 열연도 좋았다.

알려진대로 '해무'는 봉준호 감독이 처음으로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지금껏 어떤 영화에서 보여진 것보다 인간의 숨겨진 본성을 솔직하게 꼬집는다. 욕망과 양심 사이 줄다리기가 우리네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어둠 속에서 휘몰아치는 파도와 드넓은 바다는 보기만 해도 더위를 식혀줄 것. 심리 스릴러·액션·드라마·로맨스가 한데 모인 영화. 보는 이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로맨스가 다소 부각된 느낌은 든다.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은 오는 8월 13일.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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