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2700억원어치 쓰레기…천덕꾸러기 카드 영수증

대부분 고객들 결제하고 "버려주세요"…자원낭비에 유해물질까지 검출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 쓰레기통 속에 카드 영수증이 버려져 있다.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 쓰레기통 속에 카드 영수증이 버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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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억원어치 '환경 쓰레기', 어떻게 해야 하나.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신용카드 결제시 출력되는 영수증이 개인정보 유출 우려 외에도 자원낭비, 환경호르몬 위험 등의 문제를 낳고 있다. 그러나 카드회사나 관련 당국에서는 이를 개선할 방법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2일 카드업계 등에 따르면 한 해에 발급되는 영수증은 80억 건. 업계에서는 영수증을 발급하고 처리하는 데 연간 270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큰 비용을 들여 발급되는 엄청난 양의 영수증은 대부분 쓸모 없이 버려지고 있다.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인근의 한 편의점. 손님들은 카드 영수증을 받자마자 대부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구겨버리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김문중(51)씨는 "하루에 발생하는 쓰레기 중 가장 번거로운 것이 영수증이다"며 "이를 주어담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말했다. 영등포구에 있는 한 중소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지나(25ㆍ여)씨 역시 손님에게 '영수증 드릴까요'라고 묻는 게 제일 스트레스다"며 "대부분 영수증을 가져가지 않거나 버리는데 굳이 발급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요즘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결제 내역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종이 영수증 발급 필요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카드 영수증은 인체에 유해하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2011년 한국소비자원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지역에서 발행되는 영수증 89%에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가 검출됐다. 전문가들은 한 장의 영수증에 포함된 비스페놀A는 약 0.2~6 마이크로그램(μg)으로 미량이지만 누적될 경우 아이에게는 발달장애, 성인에게는 성기능 장애와 당뇨병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서울대 예방의학과 홍윤철 교수는 "영수증에 한 장에 포함된 비스페놀A는 인체에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이것이 누적되면 건강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더 좋은 대체수단이 있다면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처럼 자원 낭비에 인체 유해 논란까지 빚고 있는 영수증 문제에 대해 업계나 당국은 개선책 마련에 소극적이거나 문제점으로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비씨카드는 2012년 '페이퍼리스(paperless)'제도를 도입해 불필요한 영수증은 발급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으나 현재는 흐지부지된 상태다. 삼성ㆍ신한ㆍ롯데카드 등 다른 주요 카드사는 그나마 이런 시도도 하지 않고있다. 비씨카드 관계자는 "점원이 영수증을 출력하기 전에 소비자에게 일일이 영수증 출력 여부를 물어봐야 하는데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있다"며 "고객이 서명할 때 영수증 미출력을 선택하게 하는 프로그램도 단말기 통합이 안 돼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전자영수증 체제로 개편하는 방안도 제시됐으나 이도 쉽지 않다. 카드 업계, 밴(VAN)사, 가맹점들은 비용절감과 업무효율성 측면에서 종이 영수증을 전자영수증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부분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이들의 이익구조와 결제시스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결제시스템이 하나의 통합적 체제로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체 유해성 개선도 지지부진하다. 2012년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비씨카드와 '신용카드 종이영수증 미출력을 통한 환경기금 조성' 사업에 나섰으나 현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2012년 7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조성된 기금은 1억5400만원에 불과하고 그조차 현재까지 1원도 쓰이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정부ㆍ금융사ㆍ유통사 등 전체 시스템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녹색소비자연대 김우정 국장은 "이 문제는 단순히 기금조성만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정부 및 이해당사자들 간의 협의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인 종이 영수증보다 교환 및 환불도 가능한 전자 영수증체제로 하루 빨리 개편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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