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리조트 참사]'남겨진 자의 슬픔' 유족들의 애끓는 작별

▲ 울산 북구 21세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유가족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슬픔을 나누고 있다.

▲ 울산 북구 21세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유가족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슬픔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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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뭐시 그렇게 급해서 갔노. 가서도 씩씩해야 돼. 아빠가 미안해…" (김판수·고 김진솔양 아버지)

아홉 송이의 꽃다운 청춘이 진 날. 이제는 세상에 없는 자식을 사진으로 마주하며 유가족들은 허공을 향해 손짓했다. 만져보지 못한 마지막 얼굴, 내밀어 주지 못한 손을 잡아주려는 것이었을까.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애끓는 사랑을 토해내던 유족들은 울부짖으며 자식과 조카, 친구의 '너무도 짧았던 삶'을 추억했다. 고 이성은 양의 아버지는 "피어나는 꽃을 어떻게 하실겁니까. 불쌍습니더. 좋은 데로 가도록 빌어주이소"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고 김정훈 군의 큰 이모는 "우리 조카가 가요무대 나가라고 신청도 해줬는데…하늘나라가서 외할머니 구경 잘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판수 씨는 "누구나 인정하는 자랑스런 딸이었다. 친구들이 아빠하고 그렇게 지내냐고 할 정도로 친구처럼 지냈다"며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울분을 토했다.

친구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한 학생들은 영정 앞에 할 말을 잃었고, 부상을 입은 몸으로 빈소를 찾은 학생들도 '살아남은 죄책감'에 괴로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합동분향소를 찾은 부산외대 학생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아픔 없는 곳으로 가길 바란다"는 말들을 남긴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학교와 코오롱의 무성의한 대응에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온몸이 퍼렇게 물들고 짓눌려 얼굴을 볼 수 없는 지경인데도 코오롱과 부산외대 측은 마냥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합동분향소와 병원을 찾은 정치인들은 유족 앞에 무릎을 꿇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나란히 '안전불감증'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철저한 사고원인 규명을 지시했다.

'재발'을 막겠다는 것은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반복되던 약속이다. 그러나 매번 사고 후 재발방지대책을 만드는데도 왜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사고는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어른들이 내뱉은 말을 제대로 지키기만 했어도 젊은이들이 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을까.

23명이 숨진 1999년의 씨랜드 화재 사건, 인하대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2011년 춘천 산사태 사건, 1년도 채 되지 않은 태안 해병대 캠프 사건 등 얼마나 많은 죽음이 되풀이돼야 우리 사회는 제대로 교훈을 얻을까.

유족들과 친구들이 영정을 앞에 두고 수도 없이 반복한 '미안하다'는 말은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건네야 할 말이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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