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14장 흐르는 강물처럼(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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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시간이 없었어. 곧 만나게 되겠지. 낼이나 모레 쯤....”

“싸웠어요?”“아니. 내가 말해주지 않았나? 그 사람, 아프리카 어딘가로 일하러 간다고....”

“엔지오?” 소연이 아는 체 하며 물었다.

“그런 셈이지.” 하림은 가볍게 한숨을 한 번 쉰 다음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혜경이를 생각하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소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참. 이장 아저씨 소식은 들었어요?” 갑자기 생각난 듯이 소연이 말했다.

“아니. 무슨....?”

“이장 아저씨 죽었어요. 저수지에 빠져서.....”

“뭐....?” 하림은 깜짝 놀라서 소연을 쳐다보았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비 내리던 날, 누가 저수지에 빠져 죽어있는 걸 발견했대요.”

“........!”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해 둑길을 가다가 미끄러져 죽었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그냥 자살한 걸 거라고 했대요. 아무도 모르지만.....”

하림은 아, 하고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운학 이장이 죽다니....? 설마하니 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떠나오기 마지막 전날 화실로 찾아와 이러쿵 저렇쿵 떠들다가 간 것이 아득한 것 같았지만 불과 일주일 남짓 되었을 뿐이었다.

고향을 떠나면 어디로 갈 거냐는 하림의 질문에, ‘그냥..... 그냥 좀 돌아다니다가 남쪽 바닷가 어딘가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오.’ 하고 말끝을 흐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나 막연해서 그냥 그런가 부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림은 술잔의 남은 술을 한꺼번에 쭉 들이키며, 바람 한줄기가 가슴 한 귀퉁이를 쓸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만남은 잠깐이었지만 이야기는 많이 나눈 사이였다. 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층집 여자, 남경희라는 분 거길 떠난다는 이야기는 들었죠?” 소연이 일부러 소식을 전해주러 온 사람처럼 이것저것 말했다.

“응.”

“다행히 그녀 아버지 영감은 풀려났어요.”

“그래....?”

“고령인데다 어쩐 일인지 송사장과 최기룡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넣었대요.”

“흠.” 그건 하림이 대충 짐작했던 바대로였다. 짐작대로 남경희는 탄원서와 기도원 지을 땅을 바뀌었을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쨌거나 결론이 그렇게 났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운학 이장의 죽음이 내내 가슴에 아프게 떠돌았다. 자살이든 실수였던 죽음이란 늘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살구골에서 벌어진 그런 이야기들도 이제 시간이 흐르면 바람 속에 묻혀 전설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었다. 마음이 더없이 허전했다.

“소연아.” 하림이 조그맣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소연이 고개를 들어 하림을 쳐다보았다. 예전엔 몰랐는데 짙은 갈색 빛이었다. 짙은 갈색 눈이 왜요? 하고 물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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