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신종호의 '수목한계선.1'

그대들이여, 북구의 오로라 속을 성큼성큼 내달려 순록의 무리를 뒤쫓는 설인(雪人)들의 투명한 얼굴을 꿈꾸어본 적이 있는가. 훅훅 내뿜는 입김만으로도,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피가 잘 돌아 온몸이 얼음처럼 빛나는 수목한계선의 사람

신종호의 '수목한계선.1'

■ 추위는 항온동물인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도전이다. 신체를 덮은 털이 얼마 되지 않아 자체 보온능력도 다른 짐승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인간이, 천지가 얼어붙는 날들을 살아가는 일은 오랜 역사 동안 버거운 과제였다. 불이라는, 인간이 겨울을 즐기고 추위를 반가워하는 여유를 지니게 된 것은, 그것을 알맞게 진압하고 제어할 수 있는 '온도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얼어죽을'이란 말이 일상의 욕지기 속에 들어있는 것은, 추위 공포의 원형적 무의식을 반영한다. 그런 공포 가운데서도 인간은 기묘하게도 절대적인 추위가 지닌 삼엄하고 개결한 아름다움을 환상적으로 선망하는 일단(一端)이 있다. 수목한계선은 나무가 살 수 없는 만큼의 추위이다. 그곳에 나무보다 훨씬 온도를 필요로 하는 인간이, 제 온도를 모두 버리고 설원을 누비는 꿈을 꾼다. 온 몸이 얼어드는 그 추위에 심장이 폭발할 것 같은 그 찰나에 툰드라의 찬 바람이 망치처럼 귓속으로 불어온다. 순수함의 정수같은 상상 속의 설인(雪人)이 거기 서 있다. 드라큐라가 깨어나는 루마니아의 어느 고성(古城)에서 보았던 눈꽃(눈이 아니라 얼음이 나뭇가지에 맺힌 보석같은 결정체) 사이로 지나가던 하얀 사람의 이미지가, 내겐 겹친다. 이 냉랭청정의 상상력.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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