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 구린 돈이 예술을 홀리다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집 현관문 안쪽에 그림 한 점을 붙여두고 드나들 때마다 눈길을 주고 있다.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황묘농접도 黃猫弄蝶圖)'라는 제목의 단원 김홍도 작품인데 이태 전 간송미술관에 딸내미 손을 잡고 갔다가 나오던 길에 산 것이다. 물론 진품은 아니고 1만원짜리 영인본이다. 비록 영인본이라고는 해도 등을 굽혀 잔뜩 웅크린 고양이는 금방이라도 나비를 덮치려 뛰어오를 듯하고 돌 주위에 핀 패랭이꽃과 제비꽃은 소담스럽기가 그지없다. 단원의 섬세한 붓놀림이 그대로 살아 있어 새삼 놀라곤 한다.

해마다 두 차례 일반인에게 문을 여는 간송미술관이 올 가을에도 성북동으로 사람들을 이끌 것 같다. '진경시대 화원'을 주제로 한 가을 정기전이 모레(13일)부터 보름간 개최되기 때문이다. 매년 봄과 가을이면 간송미술관에서부터 시작된 줄이 성북동 초입까지 늘어져 장사진을 이루는데 그 또한 볼거리다. 관람 후 사람들은 인근의 왕돈가스로 허기를 달래고 수연산방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내친김에 건너편 최순우 옛집으로 자리를 옮겨 자연스럽게 문화 탐방 코스를 잡기도 한다.민족의 정기가 서린 예술품을 후손들이 오롯이 볼 수 있게 하자. 10만석에 이르는 전 재산을 털어 일제가 수탈한 문화재를 지킨 간송(澗松) 전형필의 뜻은 그랬다. 문화는 향유, 만끽하는 게 제맛이라지만 공감, 함께 느낀다면 그 맛이 더할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문화재급 미술품이 탈법과 비리의 도구로 종종 등장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의혹으로 구속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수천억원대 고가 미술품을 거래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세탁하고 재산을 해외로 밀반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37억원의 지방세를 체납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집에선 고가 미술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흔적이 발견돼 사전에 빼돌린 의혹을 샀다.

압권은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컬렉션이다. 전씨 일가의 압수품에는 겸재 정선ㆍ현재 심사정 등 조선 후기 대표 화가의 작품에서 김환기ㆍ박수근ㆍ천경자 등 내로라하는 근대 화가의 그림까지 554점의 작품이 포함됐다. 모두 진품일 경우 수백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검찰은 올해 말 이 환수 미술품들을 경매로 내놓을 예정인데 벌써부터 자산관리공사(캠코)의 공매정보 사이트인 온비드에는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니 웃지 못할 일이다.가진 자들이 문화 예술품을 아끼는(?) 것은 자신만 보겠다는 문화 독점욕과 함께 미술품을 매개로 구린 돈을 더 불려보고자 하는 사리욕이 겹쳐진 탓일 게다. 미술품은 딱히 매겨진 정찰가가 없다. 그러니 사고 파는 사람 간 흥정이 맞으면 가격이 결정된다. 그 때문에 싸게 사서 비싸게 팔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아 돈 많은 사람들의 재테크 수단이 되고 이 과정에서 비자금을 마련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술품이 각종 비리와 비자금의 온상이 된 듯한 분위기는 마뜩잖다. '구린내 나는 돈뭉치가 예술혼을 희롱하는' 상황을 단원은, 간송은 어떻게 볼까. 옛 분들은 명작에 감상인(印)과 소장인(印)을 찍곤 했다는데 이를 흉내 낸답시고 행여 작품을 훼손하지는 않았을는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보는 황묘농접도가 참 달라 보이는 요즘이다. 구린내 나는 돈이 예술을 홀리는 세상이라니.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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