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추징금 완납 아직 갈 길 멀다

대법원 확정판결 16년만에 자진납부 발표, ‘진정성’은 완납 뒤에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해 최고 권좌에 오른 뒤 재계를 동원해 막대한 부를 쌓은 전두환 전(前) 대통령이 16년 만에 비로소 본격적인 추징금 납부를 시작한다.

10일 전씨 일가는 미납 추징금 자진 납부 계획을 발표하고 국민 앞에 사과한다. 1997년 대법원이 전씨에 대해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한 지 16년 만이다. 전씨에 대한 미납 추징금 집행은 전체 추징금 가운데 4분의 3이 더 국고로 들어가면 완료된다. 이에 앞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 4일 사실상 미납 추징금 '납부'를 완료했다. 그러나 자진 납부 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전씨 일가의 추징금 납부는 수월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수표 등 현금성 자산으로 미납 추징금 납부를 마무리한 노씨와 달리 전씨의 경우 부동산, 미술품, 채권 등 재산의 종류가 다양한 탓이다.

전씨 측은 검찰이 압류한 재산에서 손을 떼고, 부족한 부분은 전씨 자녀 4남매와 사돈이 나눠 낼 예정이다. 전씨 내외가 살고 있는 서울 연희동 자택도 국고에 내놓을 의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 일가가 내놓을 재산 규모는 미납 추징금을 넘어서는 1700억원 규모지만 실제 국고로 온전히 들어갈지는 미지수다.

검찰이 그간 전씨 비자금에서 유래한 재산으로 보고 압류ㆍ압수한 재산은 경기 오산 땅, 서울 한남동 땅과 이태원 빌라, 경기 연천 허브빌리지, 연금보험과 미술품 수백점 등 9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검찰이 이를 공매 처분해 매각대금을 국고에 넣을 경우 대개 낙찰가격이 입찰가의 70~80% 수준으로 형성된다는 점, 검찰 압류 자산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작은 700억원대라는 지적, 매각대금의 3분의 1 남짓 규모인 양도소득세 부담 등을 고려하면 실제 납부액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전씨 측은 이를 감안해 금융기관을 통해 매각을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추징금 완납을 약속하는 각서도 검찰에 제출할 예정인 만큼 압류만 풀고 추징금 납부를 모른 척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 경우에도 양도소득세 부담과 인수자가 나서야 한다는 사정은 마찬가지다.

압류 자산에 대한 처분이 또 다른 피해를 부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차남 재용씨는 서울 서소문동 일대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저축은행들로부터 300여억원을 조달하며 경기 오산 땅을 담보로 내놨다. 이처럼 전씨 일가가 자금 조달을 위해 이용한 부동산이 미납 추징금 납부에 쓰이는 과정에서 금융권의 담보가 부실해질 염려도 제기되고 있다.

추징금 납부를 둘러싼 전씨 일가의 태도 변화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아 하는 시각이 있다. '29만원 할아버지'라고까지 불리던 전씨 측은 당초 올해 검찰이 추징금 환수 작업에 착수하자 "돈이 없다"며 자진납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분명히했다. 그러다가 처남에 이어 직계 자녀까지 조세포탈 및 국외재산도피 혐의 등으로 사법처리 대상에 오를 지경에 놓이고서야 뒤늦게 납부 의사를 밝힌 데 대해 아직 '진정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자진 납부 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차남 재용씨의 불법증여에 따른 조세포탈 혐의 등에 대한 검찰 수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다만 전씨 비자금이 일가 재산으로 둔갑한 정황을 쫓기 위한 수사였던 만큼 추징금 완납이 확실해지면 사법처리 수위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선 미납 추징금이 모두 국고로 귀속될 때까지는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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