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뷰] 오바마, 감시보다 신뢰

[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여름 휴가를 하루 앞둔 지난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뜨거운 논란이 됐던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의 무차별적인 감시활동에 대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공중파 방송은 물론 인터넷 언론 매체들도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며 중요 뉴스로 다를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견에서 9.11테러 이후 정보기관들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안겨줬던 관련 규정과 관행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고, 감독을 강화하면서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9.11 이후 테러 및 범죄 수사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시민자유권을 일부라도 제약할 수 있도록 한 '애국법'을 손대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인권침해 논란이 가장 많았던 전화기록 수집 조항 등을 개정해줄 것을 의회에 요구했다. 이밖에 해외정보감시법원(FISC)의 개혁과 정보기관의 투명성을 위한 정보공개 확대 등을 다짐했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은 다소 의외다. 전직 정보 요원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의 지난 6월 폭로 이후 비판 여론이 들끓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정보기관을 두둔하는데 주력해왔다.

폭로 직후 TV 방송 인터뷰에 수차례 출연, "감시 프로그램은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거나 "국민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변해왔다.

때문에 이번 발표를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은 누구보다 더 난처했을 것 같다. 자신의 기존 주장에서 한참 뒤로 물러서야 하고, 일부 내용은 뒤집어야했기 때문이다.

스노든에 대한 평가 문제도 걸리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정보기관 개혁 조치가 스노든의 폭로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 도중 "나는 그가 애국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애써 강조한 것도 이런 고민과 무관치 않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같은 문제들을 충분히 예견했을 것이다. 그래도 입장을 선회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그는 기자회견에서 함축적으로 밝혔다. "대통령인 내가 이런 (감시) 프로그램에 대해 신뢰를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내가 아닌) 국민들이 신뢰를 가질 필요가 있다"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기존 정보기관들의 활동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자신이 옳다는 신념만 되풀이해선 국민과 소통할 수 없고 국정에 대한 지지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다음 날 1면에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움직였다"는 제목을 뽑았다.

오바마의 대통령의 기자회견의 백미는 발표 내용 자체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의 주장에 갇혀있지 않고 소통하겠다는 자세와 다짐이었던 셈이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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